‘내가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 간혹 빌려서 타곤 하는데, 여위고 걸음이 느린 둔마(鈍馬)를 탈 때는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 가다가도, 도랑이나 구덩이를 만나면 내려서 걸어가므로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 /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駿馬)를 타면 의기양양하게 채찍질하며 달리는데,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지만 어떤 때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 아!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변하는 것이 이와 같을까? / 남의 물건을 잠깐 빌려서 쓸 때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고려 때의 문신인 이곡(李穀, 1298~1351)의 <차마설(借馬說)> 앞부분이다. 이 작품은 그가 ‘말’을 빌려 탄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이치를 ‘소유’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으로 유추하여 제시한 고전 산문이다. 이곡은 삼은(三隱) 중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의 부친으로 가전체 <죽부인전>의 저자이다.
‘붉은 말의 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20일이 지났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늘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말처럼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을 한다.
말은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동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가장 먼저 느끼는 존재이다. 고삐를 잡은 손이 흔들리면 말도 불안해지고, 기수가 조급하면 말의 발걸음도 흐트러진다고 한다. 인생 또한 다르지 않다. 마음이 앞서면 길이 꼬이고, 욕심이 과하면 균형을 잃는다.
말의 등장은 역사에서도 오래되었다. 기마민족으로서 광활한 지역을 다스렸던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인 ‘수렵도’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모습이 나오고, 경주 대릉원에서 출토된 ‘천마도(天馬圖)’는 5~6세기경 그림으로 추정하고 있다.
말은 단순한 이동 수단만은 아니었다. 파발마는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통신과 소통의 메신저였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닦은 ‘차마고도’는 은둔의 문명을 잇고 다양한 물자의 교역로 역할을 하였다. 이 길을 따라 종교, 역사, 음식, 예술 등 삶의 양식이 서로 섞이고 교류하였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란 말이 있다. 이는 귀를 닫아 버리고 남의 충고를 흘려듣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이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겠지만, 이웃의 충고나 가족의 조언, 시대의 신호를 들으려 하지 않으면 아무리 올곧은 사람이라도 잘못된 길을 갈 수가 있다.
게다가 우리는 종종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세상을 바쁘게 지나치며 삶의 풍경을 잃어버리고, 더 빨리 내달리라고 주마가편(走馬加鞭)하듯이 자신이나 남을 쉼 없이 다그치기도 한다.
명마(名馬)는 아무나 알아보지 못한다. 춘추전국시대의 말 감별사였던 백락은 남다른 안목을 지녔다. 사람이 아무리 현명해도 알아주는 이가 있어야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고사성어 ‘백락일고(伯樂一顧)’도 그로 인해 생겼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각자의 말을 품고 산다. 어떤 이는 질주하는 한마(汗馬)를, 어떤 이는 묵묵히 견디며 천천히 걸어가는 노마(駑馬)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병오년의 출발점에서, 눈 옆 가리개를 한 채 앞으로만 내달리는 경주마의 ‘속도’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 성찰도 하고 이웃의 고통도 살피는 ‘여백’이 필요하다. 질주보다 중요한 것은 여유이고, 결과보다 귀한 것은 과정이나 여정이다. 세상살이에는 더 빨리 가는 선택보다 덜 흔들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길이다.
올해는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찬찬히’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해였으면 한다.
이곡의 <차마설>은 이렇게 이어진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은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 그 빌린 바가 깊고 많아서 대개는 본래 자기 소유인 것처럼 하고 끝내 돌이켜보지 않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략)’
권영해 시인·울산예총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