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지난 60년간 대한민국 산업수도로 국가 경제를 떠받쳐왔다. 조선업 불황, 디지털 전환, 석유화학 위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선·자동차·석유화학으로 대표되는 주력 산업이 건재한 울산은 여전히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다.
통계상 울산은 명실상부한 ‘부자 도시’다. 2024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울산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약 8000만원 선을 상회하며 압도적인 전국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전국 평균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그러나 화려한 수치 뒤에 가려진 울산 시민들의 목소리는 차갑다. “울산이 전국에서 가장 잘산다는데, 왜 우리 집 살림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냐”는 물음은 울산의 골목마다 메아리친다. 이 의문은 울산의 성장 과실이 지역 내부로 흐르지 못하고 어디에선가 멈춰 서 있다는 구조적 경고다.
울산의 성장이 시민의 일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역외유출’ 구조에 있다. 울산은 전국에서 지역소득 역외유출이 가장 심각한 도시 중 하나다. 공장은 울산에 있고 노동도 울산에서 이뤄지지만, 기업의 이윤과 의사결정권은 수도권 본사로 향한다. 배당과 자본소득, 미래 투자 전략이 지역 밖에서 결정되다 보니 울산에서 창출된 부(富)가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 흐르거나 재투자되는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진 지 오래다. 실제로 울산의 1인당 GRDP는 독보적 1위지만 가계가 실제 체감하는 1인당 개인소득 순위는 서울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 생산 지표와 생활 지표 사이의 극심한 간극이 바로 ‘성장의 역설’이다.
산업 현장의 변화는 울산 시민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울산 동구를 보면 조선업 수주 호황이라는 장밋빛 뉴스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노동 구조는 과거와 다르다. 자동화의 진전과 외주화의 확대는 안정적인 직접 고용 대신 ‘불안정한 간접 고용’을 늘렸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듯 울산 동구의 30대 초반 조선업 노동자는 2015년 약 8800명에서 최근 27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숙련된 청년들이 떠난 자리는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생산액은 유지될지언정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정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성장은 계속되는데 인구는 줄어드는 기이한 풍경이 동구의 현실이다.
산업도시가 감내해야 하는 ‘성장의 비용’ 또한 오롯이 지역의 몫이다. 재정 구조 역시 불합리하다. 정부는 울산의 GRDP가 높다는 이유로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지만 정작 주요 세원은 국세로 징수된다. 산단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이익 중 지방재정으로 환류되는 비중은 극히 낮다. 결국 산단 주변의 도로를 닦고 주민 안전을 챙길 예산은 늘 부족한 실정이다. 이제는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첫째, 실질적인 재정 분권을 통해 역외유출 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산업단지에서 발생한 국세의 지역 환원 비중을 높여 울산에서 창출된 부가 지역 경제와 생활 인프라로 다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기업과 국가는 산업도시가 감내해 온 비용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 산업재해와 환경오염, 인구 구조 변화와 노후 인프라 부담 등 산업 활동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비용을 더 이상 지자체에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이주노동자 확대에 따라 주거·안전·의료·행정 등 새로운 부담이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서는 ‘고용분담금’과 같은 제도적 대안을 통해 기업과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성장의 결과가 지역 경제 생태계 전반으로 스며들게 해야 한다.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성장을 넘어 일자리의 질을 높여 청년들이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대기업의 실적이 지역 상권의 활력과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로 직접 연결되도록 경제 평가의 척도를 바꿔야 한다. 지역 내 상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지역 경제 구성원 모두가 성장의 온기를 체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울산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려온 저력이 있는 도시다. 이제 그 기여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높은 GRDP가 지역 주민의 지갑 속 따뜻함으로 연결될 때 울산은 비로소 차가운 산업도시를 넘어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로 완성될 수 있다. 성장은 숫자로 기록되지만 그 가치는 오직 주민의 삶으로만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선 국회의원 (울산 동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