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것은 떠나게 하고
남아 있는 것들과 뼛속까지 사무치면
이 바닷가가 적막하다. 먼 데 있어 아득하던
수평선도 눈썹에 와 닿는 것이니
일찍 나온 반달이 구름을 접었다 폈다
파도가 모래톱을 반쯤 입혔다 벗겨놓는다
철썩이는 갈기로 엎어지지만
꺾이지 않는
차고 빛나는 걸신들의 영원
가장 왕성한 탐식으로
몽돌들은 제 살을 긁는 허기와 마주친다
아무래도 이 공복 채울 길 없다
파도가 파도 밖에서 부른다
들키지 않으려고 아귀는
심해 속으로 더욱 깊이 잠수한다
부끄러운줄 모르는 ‘아귀만도 못한 사람들’
입은 크고 배는 작은 아귀는 불교에서 끝없는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는 중생을 뜻한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처럼 몽돌은 끝없는 파도의 탐식에 갇혀있다.
파도처럼 ‘꺾이지 않는 차고 빛나는 걸신들의 영원’은 해소되지 않는 욕망, 탐식의 본질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닷물은 마실수록 갈증을 불러일으키니, ‘제 살을 긁는 허기’처럼 욕망은 결국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고 만다. 저 무서운 도로(徒勞).
‘파도가 파도 밖에서 부른다’는 다소 역설적인 표현은 소크라테스가 들었다는 다이몬(daimon)의 소리, 곧 양심이나 내면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욕망을 절제하라는 그 소리에 아귀는 ‘들키지 않으려고’ 심해로 잠수한다고 했다. 이 행위를 보면 아귀는 적어도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이다.
부끄러움, 그러니까 희미하게 남은 양심은 하늘에 뜬 반달로 표현됐다.
환한 보름달이 아닌, 그마저 구름에 가렸다 나왔다 하는 반달.
그래도 어디인가.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큰소리를 쳐대는 후안무치한 사람들, 아귀만도 못한 사람들도 세상에 많으니. 그래서 적막하니.
송은숙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