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인가 그 눈빛을 훔친 적 있었네
촛농처럼 흘러내린 얼굴, 코가 없는 얼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내 눈길을 거뒀지만
나는 보았네 촛불처럼 흔들리는 눈동자
소문은 악취처럼 쉽게 뭉쳤다 흩어지곤 했지만
오늘은 벽에 귀를 대고 그녀가 우는 소릴 듣네
그 얼굴을 똑바로 보는 일이란
허기와 마주 앉아 다 식은 저녁을 말아먹듯
서둘러 묵묵해야 하는 일
사방을 좁혀오는 빈방의 어둠 속에서
반짝 물기를 감추는 그릇을 못 본 체하는 일
가늘게 새는 물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네
그녀가 문 앞에 내놓은 밥그릇
핥고 가는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조금씩만 그녀를 엿보고 가네
열린 문틈 사이로 그녀
천천히 녹고 있었네
방바닥이 온통 물집이었네
남의 고통 알면서도 선뜻 다가가진 못해
엿보고 훔쳐보는 관음에 대한 서사이지만 거기엔 쾌감이 아닌 슬픔이 느껴진다. 입춘이 다가오는 이맘때쯤의 눈사람일까, 얼굴이 흘러내리고 눈이 녹아 바닥에 흥건히 고인. 시에서 눈사람은 그처럼 눈물범벅이 된 슬픈 여인을 가리킨다. 그런데 굳이 ‘겨울, 눈사람’이라 한 것은 그녀 내면의 차가움, 어둠, 고독, 슬픔 등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촛농처럼 흘러내리거나 코가 없는 얼굴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슬픔이나 큰 상실감을 말한다. 하지만 타자들은 그녀의 슬픔을 위로하거나 공감하기보다 한갓 이야깃거리나 소문으로 부풀려 오히려 상처를 들쑤시고 벌려놓는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로 보아 그녀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다정한 사람이 더 쉽게 상처받는 법. 그러므로 때로는 침묵이 위안이 될 수 있다.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것이 울음을 잦아들게 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 슬픔을 추스르고 다독거릴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화자의 관음이 연민을 넘어 ‘연대’로 확장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방바닥이 물이 아니라 ‘물집’이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이때 방바닥은 발바닥으로도 읽힌다. 고통의 무게를 감내하느라 온통 물집 잡힌 발바닥. 왠지 연상호 감독의 <얼굴>이란 영화에서 따돌림당하던 ‘영희’가 생각나는 시이다.
송은숙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