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시간, 혹은 모두가 잠든 새벽.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인 택배 상자를 마주할 때마다 문득 서늘한 질문이 스친다.
이토록 눈부시게 편리한 세상이 과연 온전히 정당한 대가 위에 서 있는 것인지 말이다. 손가락 하나로 생필품부터 가전까지 거의 모든 물건을 집 앞까지 배달받는 시대, 그 압도적인 편리함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일상이 되었고 수많은 가정에서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는 우리가 누리는 이 편리함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소비해도 되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묻게 만든다. 국민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은 단순한 전산 오류나 기업의 과실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를 포함하는 수치이며 우리 사회의 디지털 신뢰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주소와 연락처, 구매 이력이라는 사적인 데이터를 기업에 맡길 때 그들이 최소한의 방어막은 갖췄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차원의 책임 있는 설명과 진정성 있는 성찰은 충분했는지, 경영진의 태도가 불안에 떠는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는지 의문이 남는다. 사과보다는 변명이, 책임보다는 회피가 앞서는 모습에서 초일류 기업의 풍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화려한 ‘로켓배송’의 신화 뒤에 가려진 노동의 현실이다. 과거 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조직적 은폐 의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 사람의 고단한 노동이 기록에서 임의로 지워지고, 치열했던 과로의 흔적이 관리의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는 정황들은 이 사회가 노동을,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되묻게 한다.
첨단 알고리즘이 지시하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소모되는 현장, ‘혁신’과 ‘효율’이라는 매혹적인 단어 뒤에서 사람이 지워지는 구조는 결코 우리가 바라는 미래라 부를 수 없다. 진정한 혁신은 기술의 진보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의 존엄까지 함께 끌어올릴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쿠팡 경영진이 보여준 과거의 발언과 태도는 또 다른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들은 한국 사회와 소비자, 그리고 현장 노동자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가. 한국 시장의 거대한 규모와 거기서 창출되는 막대한 수익성은 존중하면서도, 정작 그 이익을 만들어내는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은 결여되어 있지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를 단지 ‘수익 관리의 대상’으로, 노동자를 대체 가능한 ‘비용’으로만 바라보는 시선 위에서 지속 가능한 신뢰가 자라날 리 만무하다.
물론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추구다. 그러나 21세기의 기업 경영은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요구받는다.
법과 규제의 준수, 노동의 존엄성 보장, 철저한 개인정보 보호는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특히 한국 사회라는 토양 위에서 성장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플랫폼 기업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 또한 무겁게 감당해야 마땅하다.
편리함은 기술이 만들지만, 사회의 품격은 태도가 만든다. 지금 우리가 묻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본주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의 생명과 권리가 이윤보다 앞서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 아닐까.
이창억 지웰시티자이1단지 입대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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