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6일 방영된 흑백요리사2 11회 ‘무한 요리 천국’편은 묘하게도 요리 프로그램 같지 않았다. 재료는 무제한, 시간은 180분, 제출 횟수도 제한이 없다. 실패한 요리는 기록되지 않고 최고 점수만 남는다. 요리 경연의 규칙인데도, 우리는 익숙한 구조를 떠올린다. 인공지능(AI)이 학습하는 방식이다.
이 조건에서는 많이 만들고 빨리 고치며 계속 시도하는 전략이 유리하다. 실패의 비용은 낮고 반복의 부담도 작다. 참가자들은 강화학습을 거친 AI처럼 움직였다. 실패는 실수가 아니라 데이터였고, 심사위원의 반응은 즉각적인 피드백이 되었다. 요리는 점점 더 안전한 방향으로 수렴하며 평균 이상의 결과가 빠르게 쌓였다.
그런데 우승자는 이 흐름을 따르지 않았다. 최강록 셰프는 여러 번 제출하지 않았다. 그는 180분을 오롯이 한 요리에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자신 있는 요리’ 단 하나를 위해서였다. 반복 제출로 반응을 살피는 실험 대신, 한 번의 선택과 한 번의 결과를 택한 것이다.
여기서 AI가 넘기 어려운 지점이 드러난다. AI는 빠른 시도와 수정으로 평균을 끌어올리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무엇을 반복할지뿐 아니라 무엇을 반복하지 않을지, 어디에 모든 시간을 걸지 결정하는 일은 데이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축적된 전문성과 인간의 사유에서 나온다. ‘많이 시도해 평균을 올리는 방식’과 ‘하나를 깊게 선택하는 방식’은 다른 능력이다.
나는 이 장면이 AI시대 다음 세대의 생존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실패 비용은 더 낮아지고 시도는 더 무한해지며, 평균적인 성과는 빠르게 상향 평준화될 것이다. ‘웬만큼 잘하는 사람’은 넘쳐난다. 하지만 모두가 비슷해질수록 차이를 만드는 선택은 더 희소해진다. 결국 경쟁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선택지는 두 갈래로 좁혀진다. 하나는 상위 10%의 전문가가 되는 것. 주니어의 반복 업무는 AI가 대체하고, 상위 전문가는 더 적은 인력으로 더 깊게 일한다. 다른 하나는 AI와 기계가 잘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 즉 패턴 안에서 점수를 올리기보다 패턴을 벗어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보다, 무엇이 정답이어야 하는지 묻고 그 질문을 끝까지 버티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이 질문은 곧바로 학교로 향한다. 지금 20대 미만의 학생들에게 이 변화는 먼 미래가 아니다. 샘 알트만은 향후 몇 년 안에 AGI 가능성을 말한다. 시점의 정확성은 논쟁적이지만, 핵심은 변화의 속도가 다음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과 겹친다는 점이다. “주니어로 입문해 실수하고 배우며 숙련자가 된다”는 경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면, 성장의 사다리도 함께 약해진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교는 더 이상 모든 학생을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없다. 교육과정의 핵심은 압축하고 본질은 더 빠르게 가르쳐야 한다. 동시에 학생의 특성과 강점을 조기에 파악해, 어느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울지 선택하도록 도와야 한다. 교실 안에서 직업을 상상하게 하기보다 현실에 가까운 과업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나중에 결정해도 된다’는 말은 이제 무책임해질 수 있다.
다음 세대에게 AI 활용능력은 기본이 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어떤 방식을 반복하지 않을 것인지, 어디에 180분을 걸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빠른 시도 뒤에 느린 사유를 붙일 수 있는 사람만이 ‘결과’가 아니라 ‘작품’을 만든다.
AI는 평균을 빠르게 끌어올린다. 그러나 평균이 높아질수록, 자기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선택과 성찰의 가치는 더 커진다. 흑백요리사에서 모두가 강화학습처럼 움직일 때, 단 한 사람만이 그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우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AI시대의 생존 역시 마찬가지다. 그 결정은 ‘능력’만이 아니라 ‘태도’이며, 교육은 그 태도를 길러야 한다. 반복의 유혹을 거부하고 어디에 180분을 걸지 결정하는 힘은,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을 통해 끝내 만들어진다.
홍광표 울산과학대 유아교육과 교수 울산형유아교육·보육혁신지원사업단 울산늘봄누리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