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몇 오라기 수염 더 돋았으나
6척의 몸은 도무지 자라지 않네
거울 속 얼굴은 해마다 달라도 철부지 같은 마음은 지난해 그대로네
연암집(燕巖集)
연암 선생의 서체는 웅혼하고 초상화 또한 우람하다. 초상화 속 선생은 쭉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로 범의 눈을 하고 있다. 키가 크고 풍채가 좋으며 용모는 엄숙하고 단정하다.
“무릎을 모아 조용히 앉아 계실 때면 늠름하여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으셨고 풍체가 먼저 남을 감복시킨다. 그 두툼한 몸집으로 담소할 땐 언제나 격의없이 말씀하셨다.” 선생의 아들 박종채가 ‘나의 아버지 박지원’에서 말했다. 위 시는 ‘설날 아침에 거울을 보며’ ‘연암집(燕巖集)’권 4에 실려 있는 시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잔치가 열하의 피서산장 여름궁전에서 열렸다. 선생은 조선사절단 정사 삼종형 박명원의 개인 수행원으로 따라갔다. 의주에서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60여 일간의 여행기가 불후의 작품 ‘열하일기’이다.
선생은 요동 들판의 대평원 앞에서 ‘소리 내어 울어 볼 만한 울음 터 한번 잘 만났다’고 했다. 그 드넓은 벌판과 강들의 사이에서 선생은 부여와 고구려 사람들이 누비고 다닌 땅과 그들의 기상을 회상했고, 조선이 오랑캐라고 부르는 청의 입장에서 볼 때 차라리 누추한 조선의 자존심의 실체를 보았던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늙은이를 만나면 우울증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곤한다. 멀쩡해서 남이 볼 땐 호화롭게 잘사는 이들마저도 그런 소리를 예사로 한다. 연암 선생이 말씀하신 ‘소리 내어 울어 볼 만한 울음 터’ 그런 곳을 찾아 마음껏 실컷 소리 내어 울어봄직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땅이었던 요동 대평원 앞에서 그 드넓은 벌판과 발해연안 까지를 아우르는 국토를 회복하여 웅온한 기상으로 소리쳐 울어 볼 날을 기대해 본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목 놓아 울어 볼 날을! 청년들이여!
한분옥 시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