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좀 더 큰소리를 치면서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변을 당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어졌다. 자신의 다리를 자른 놈들은 반드시 찾아내서 수백 배 복수를 할 것이다. 김 초시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곳까지 섬뜩한 소리가 들리도록 이를 갈았다.
‘이놈들 기다려라.’
며칠 후에 좌의정 이덕형이 서인충, 김득복, 박춘석, 전응충, 박홍춘, 장오석, 김선진 등 울산지역 의병장들의 눈부신 활약을 주상에게 보고하였고, 조정에서는 울산을 군에서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울산 방어에 큰 공을 세웠고 선정을 펼쳤던 군수 김태허의 후임으로 육전(陸戰)에서 60전 60승을 한 불패의 신화적 인물인 의병장 정기룡 장군이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겸 울산도호부 부사에 임명되었다. 단기 필마로 왜군진영을 돌파하여 포로로 잡혔던 상관을 구한 까닭에 조선의 조자룡이라고 불리었던 정 부사는 부임 후에 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만나고 싶어 했지만, 부임 초기의 바쁜 업무로 인해서 만나지 못하고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9장 광명세상을 꿈꾸는 백성들-
김 초시(김응석)에게 토지 사기를 당하여 하루아침에 농지를 모두 잃게 된 천동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피땀 흘려서 가꾼 농지를 하루아침에 왈짜패 같은 김응석에게 빼앗긴 것이 너무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단칼에 놈의 목을 베어 버리고 싶었다. 그에게 초시 놈의 목을 치는 일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섣부른 행동이 가족들에게는 고통을 주는 일이 될 수 있기에 천동은 김 초시에 대한 징벌을 포기하고 울산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그렇게 결심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사흘간의 여정으로 주왕산을 다녀왔다. 보부상단에 있는 대산이 형에게 들은 얘기가 있어서였다. 형의 말대로 그곳은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와서 정착해 있는 사람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에 그들은 천동을 아주 많이 경계하였으나 그곳을 떠날 때쯤에는 흔쾌히 천동과 울산에서 이주할 사람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천동은 너무 고마워서 그들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들이 끝내 반대한다면 다른 곳을 물색해봐야 할 처지이기에 내원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주왕산을 다녀온 천동은 강목과 대식을 불러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이런 개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여길 떠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
“나는 가더라도 그 초시 놈은 반드시 죽이고 갈 거야. 봉사 나리가 아무리 말려도 나는 꼭 놈을 죽일 겁니다.”
“그러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우리가 아무리 숨어도 관군들에게 붙잡혀서 양반을 죽인 살인죄로 목이 잘릴 거야. 너뿐만이 아니라 대식이와 나도 공범으로 몰려서 죽을 수 있어.”
“지금 김 초시 놈을 그냥 두라고 말하는 겁니까?”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