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씀이 생각난다. ‘말이 앞서면 될 일도 잘 안된다. 좀 이뤘다고 자만하면 천기가 누설되어 일을 그르친다’고 하셨다. 칭찬이나 성취에 자만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뭔가 이루었다고 다 얻은 듯이 떠벌리면서 우쭐대거나 선을 넘으면 오래 못간다는 뜻이리라. 절제와 신중, 내실을 강조한 말이다.
최근 법원의 판결에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란 말이 언급되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얼마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가 양형 이유에서 인용했다. 청탁과 결부된 사치품을 받아 치장한 피고인을 질책하면서 ‘굳이 값비싼 재물을 두르지 않더라도 검소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고 하였다. 불치(不侈)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말은 한국적 미학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으로 가끔 인용된다. 고려때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 시조 온조왕의 궁궐이 그와 같다고 칭찬하였다. 조선초 정도전도 궁궐 건축에 대해 ‘사치하면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고, 누추하면 조정의 존엄을 보여 줄 수 없다’고 조선경국전에 썼다. 궁궐을 평가한 말이 천년을 넘어 판결에서 인용되니 인상적이다.
지위가 높아지거나 부를 쌓으면 마치 세상이 자기 아래 있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권한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은 유혹이 생기나 보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면 갑자기 모든 것을 다 잘 아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을 쏟아내기도 하는데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정보가 집중되고 주변에서 받들어 주는데다 지위에 따른 자신감까지 더해져서 그렇게 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경험과 지식은 축적하였으나 지혜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도 낭비적 요소를 없애고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품질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해야지 자만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화려한 사무실 환경보다는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다.
권력은 속성상 남용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힘을 가지면 교만해지기 쉽고 드러내어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과잉이나 결핍이 아닌 중간의 적절함을 유지해야만 성취가 빛날 수 있다.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절제다. 절제는 겸손에서 나오고 균형 감각과 상통한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세상사에서 두루 필요하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정신은 건축은 물론 정책이나 제도를 설계함에 있어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국격에 맞는 필수적인 기반 시설과 적재적소에 재정을 집중하지 않고 불필요한 토목공사나 보여주기식 행사를 벌인다면 이는 절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포퓰리즘이라 할 수 있다. 언행이 가볍지 않고 권위주의적이지 않으며 품격있는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도 절제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국민 생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입법도 마찬가지다. 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의 내용은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최근 사법 및 검찰 제도 등 여러 가지 개혁이 진행중에 있다.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내용이나 방법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절제와 균형을 이룰 때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화이불치 즉 빛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 된다.
사치스럽지 않으면서 격조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겉치레에 의존하지 않고 내적인 성숙과 지적 소양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품격과 매력을 높이는 길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말이 요란하고 자만하면 일을 그르치기가 쉽다.
박기준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