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등 10대 대기업이 올해 5만1600명 규모의 채용 계획을 발표하며,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 ‘공채 부활’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숫자 이면에는 여전히 ‘학벌주의’라는 낡은 망령이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재단법인 ‘교육의봄’ 조사 결과, 기업 인사 담당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를 평가에 반영한다고 응답했다. 출신 학교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6.2%에 불과했다. ‘블라인드 채용’과 ‘능력 중심 평가’라는 기업들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현실에서의 학벌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보이지 않는 스펙’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뼈아픈 지점은 채용 시스템의 키를 쥔 10년 차 이상 베테랑 인사 담당자들의 86.9%가 학벌을 주요 지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업 내 의사결정 주체들이 여전히 성실성, 학습 능력, 소통 역량 등 직무 핵심 가치를 ‘출신 대학의 서열’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변화를 주도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관행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학벌주의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대통령 주재 간담회에서 발표된 5만여 명의 신규 채용 계획 중 66%는 신입사원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그러나 지원자의 ‘오늘’과 ‘내일’의 잠재력을 보기 전, ‘어느 대학 출신인가’라는 과거의 낙인부터 확인하는 이중성은 구직자들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긴다.
학벌은 개인의 역량을 증명하는 절대적 척도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은 공정한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와 다름없다. 오죽하면 교육계 일각에서 기업의 자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법적 기준을 통해 학벌 차별의 한계를 명확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기업은 이제 ‘역대급 채용’이라는 숫자 뒤에 숨어 생색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학벌이라는 견고한 벽이 허물어지지 않는 한, 취업 준비생에게 ‘공정’은 허울뿐인 말장난이다. 단 한 명을 뽑더라도 그 사람의 실력과 직무 적합성을 편견 없이 평가하는 시스템 혁신이 먼저다.
수도권 일극화로 전국의 지방대는 벚꽃피는 순서대로 사라지고 있다. 이대로는 지방대 출신 역시 벚꽃이 지듯 기회가 사라지는 현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기업의 화려한 채용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실력과 잠재력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실력 중심의 채용 문화’라는 근본적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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