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 시대, 우리는 왜 판단부터 내보내는가, 조기퇴직은 선택처럼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선택이 아니다.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주된 일자리 평균 퇴직 연령은 49세 수준이다. 제도와 현실 사이에는 10년 이상의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관행이라 부르지만, 구조를 들여다보면 연령을 기준으로 한 조용한 차별에 가깝다.
울산의 제조 현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조선소에는 자동용접 로봇이 늘고, 자동차 공장에는 협동로봇이 사람과 나란히 선다. AI는 불량률을 예측하고 데이터는 생산 계획을 조정한다. 스마트팩토리는 이미 일상이다.
동시에 울산은 데이터센터 유치, 수소 산업 클러스터 확대, 이차전지 소재 산업 육성 등 신사업을 추진하며 산업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전환의 속도는 빠르다. 그런데 이 전환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반복된 선택을 하고 있다.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세대를 먼저 내보내는 방식이다. 인건비 절감, 조직 효율화, 세대 교체라는 명분이 뒤따른다. 그러나 질문해야 한다. 왜 디지털 적응이 빠르다는 이유로 젊음은 투자 대상이 되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험은 정리 대상이 되는가.
1960년생 세대는 울산 산업 성장의 중심에 있었다. 조선 호황을 겪었고,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었다. 설비가 멈췄을 때, 납기 압박이 극에 달했을 때, 안전사고의 문턱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운 세대다. 이 경험은 매뉴얼에 다 담기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 순간에는 그 어떤 알고리즘보다 빠르게 작동한다.
AI는 계산을 잘하고, 데이터는 예측을 제시한다. 그러나 AI는 책임지지 않는다. 공정을 멈출지, 투자를 전환할지, 위험을 감수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자동화와 신산업이 확대될수록 인간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고도화된다. 실행은 기계가 하더라도, 전략과 책임은 인간의 몫이다. 특히 데이터센터, 수소, 이차전지 같은 신사업은 초기 단계에서 수많은 변수와 리스크를 동반한다. 최신 기술이 도입되더라도 산업은 결국 사람의 판단 위에 선다. 경험을 축적한 세대를 배제한 채 신사업만 강조하는 전략은 균형을 잃기 쉽다. 전환기일수록 판단의 깊이는 더 중요해진다.
평균 퇴직 연령 49세, 기대수명 83세. 우리는 약 30년을 개인에게 스스로 책임지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노동시장에서는 “이제 물러나라”고 말한다. 이 모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연령을 기준으로 기회를 축소하는 것은 효율이 아니라 배제에 가깝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조기퇴직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 재취업 지원이 아니라 역할 전환을 돕는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디지털 리터러시 업그레이드 교육이다. AI와 자동화 시스템을 코딩하는 수준이 아니라, 데이터를 읽고 기술의 판단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둘째, 의사결정 기반 문제해결 교육이다. 신산업 환경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축적된 경험을 체계화하고 전략적 판단으로 전환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멘토링 역량 강화 교육이다. 중장년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경험을 구조화해 전수하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세대 간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중요하다.
넷째, 신산업 브리지 프로그램이다. 수소·데이터센터·이차전지 산업에서도 품질·안전·공정 관리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 숙련을 신산업 언어로 연결하는 전환 교육이 필요하다. 다섯째, 심리적 전환 교육이다. 기술보다 더 큰 장벽은 정체성이다.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는 인식을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
울산은 지금 제조 고도화와 신산업 확장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세대 교체가 아니라 세대 결합이다. 로봇이 늘어날수록 판단은 더 중요해지고, AI가 계산할수록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울산 산업의 미래는 설비의 숫자가 아니라, 그 설비를 판단하는 사람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은혜 한국지역사회맞춤형교육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