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대곡천 물길따라 구비구비 옛 추억·전설이 주렁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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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대곡천 물길따라 구비구비 옛 추억·전설이 주렁주렁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1.07.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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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곡천 항공사진.

반구대암각화, 천전리각석을 낀 대곡천은 골짜기에서 배어나온 물이 하나로 모아져 하류로 흘러가는 물길이었다. 대곡천을 따라 형성된 마을과 마을사람들은 그 물길을 따라 걷거나 건너다니면서 농사를 짓거나, 장터로 나가거나, 학교를 오갔다. 반구대암각화를 지키는 대곡리주민보존회 감사 박성철씨는 “큰 짐은 소바리(소등짐)를 하고, 지게에는 반짐 정도 채워서 그 길을 수 없이 오르내렸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어른들 따라 농사를 짓고, 때로는 멱을 감던 어린 시절 대곡천의 추억을 한보따리나 풀어놨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그 곳 사람들만 알고 있는 지명이나 전설이 유독 많았다. 이번 회에는 ‘대곡천의 잊혀진 지명과 전설’들만 따로 모아봤다.



박씨는 ‘큰 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가장 많이 오갔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20~30m 하류로 내려가면 ‘큰 보’가 있었다. 홍수가 나면 보가 잘 터졌다. 마을사람들이 그 보를 이용해서 많이 오갔는데, 그 보가 없으면 불편했다. 마을사람 모두가 노역을 하면서 자주 보수할 수밖에 없었다.

“공구리가 없던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을사람들이 손수 만들었지. 우리말로 ‘물거리’ ‘삭다리’라고, 밥할때 떼는 나무처럼 좀 작은 나무를 말하는데, 그걸 말뚝으로 박고 또 걸치기도 했었지. 새끼를 엮어서 굵은 돌덩이를 넣고, 자갈을 넣어서, 튼튼한 보를 만들었다. 제일 안쪽에는 황토흙을 다져서 넣어야 했는데 그래야 물이 잘 안샜다.”

반구대암각화에서 물길이 틀어지는 곳에 보가 하나 더 있었다. ‘당산들’에 물을 댄다고 해서 ‘당산보’라고 불렀다.

▲ 박성철(가운데) 대곡리주민보존회 감사와 이재권 대곡리 이장.
▲ 박성철(가운데) 대곡리주민보존회 감사와 이재권 대곡리 이장.

“그 건 세멘(시멘트)으로 만든 보였다. 반구대에서 한실로 넘어가는 산을 ‘마당머리산’이라고 했다. 그 자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둘러가고, 당산보로 가면 질러갔다. 당산보 둑 위로 수로를 건널 때는 바위를 잡고 조심조심 건넜다. 세멘으로 만들다보니까 당산보 아래는 계곡수가 폭포수처럼 흘렀다. 물이 많을때는 장관이었다. 누나들 따라와서 옷을 벗고 다슬기 잡았다. 얼마나 많았는지 금새 한웅쿰씩 딸 수 있었다.”

직접 물을 건너가야 할 때도 있었다. 급하게 읍내로 나가거나, 농삿일 때문에 물 건너 논밭으로 나가거나, 어떨 때는 고기를 잡기 위해 나가기도 했다. “요새처럼 튜브가 있기를 했나. 놀부홍보 이야기에 나오는 ‘박’을 허리춤에 몇개씩 차고 물을 건넜다. 그러면 사람 몸이 물 위로 떳다. 박을 반으로 갈라서 속을 파내고, ‘고래뿔’이라고 예전에 강력본드 같은 걸 발라서 다시 붙였다. 그렇게 만든 박을 요새 튜브처럼 허리에 찼다. 45도 각도로 물길을 비스듬하게 타면서, 떠내려가듯이 물길을 건넜다.”

물길은 어른들에게도 위험했지만 아이들에겐 더 위험했다. 어른들은 늘 물길을 조심하라고 아이들을 타일렀다. 그 중에서도 ‘메주소’는 특별했다. 수년전 카이네틱댐을 모의실험한다고 실제 대곡천을 가로막고 계곡 바닥을 말끔하게 파냈던 적이 있다. 그 언저리의 실제 이름은 ‘메주소’였다. 메주소 가운데는 큰 바위가 2개나 있었다. 물길이 구비치며 흐르면서 산쪽으로 난 절벽 아래를 움푹하게 팠는데, 흡사 수중굴이 연상되는 동굴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아매도 물이 깊고 험해서 어른들이 멱감는 애들한테 신신당부했던 것 같다. 메주소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그 곳에 이시미(이무기), 물구렁이가 산다고도 했다. 메주소 옆에는 반구사람들이 언양가던 길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 길을 오가다가 농짝만한 바위 위에 또아리를 뚤뚤 감고있는 이시미를 보게되면 2~3년 안에 죽는다들 했다.”
 

▲ 사연댐 건설 2년 뒤 반구에 다시 모인 한실마을 사람들.
▲ 사연댐 건설 2년 뒤 반구에 다시 모인 한실마을 사람들.

이시미 이야기처럼 대곡천에는 옛이야기도 많았다. 박씨는 전해 줄 사람, 들어 줄 사람이 다 사라지기 전에 대곡천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누군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대곡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잘 들려준다고 했다.

“반구대암각화에서 하류쪽으로 1.5~2㎞ 내려가면 너럭바위가 나온다. 경치가 좋았다. 한실마을 사람들은 거기서 자주 놀았다. 그 반대편에 수리암이 있었다. 수리암 절벽 높이가 한 70~80m는 됐던 거 같다. 그 중에 제일 높은 곳이 ‘용마바위’다. ‘장군바위’라고도 불렀다. 옛날 어른들 말 들으면, 그 주변에 오막살이 집이 한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주막이 아니었나 싶다. 거기서 애가 하나 태어났는데 어찌나 용맹하고 잘났는지 아무튼 특별났다. 나랏사람들이 그쪽으로 행차하다가 그 애를 보고 너무 뛰어나니 화근이 될 것 같아 고마 죽였다고 했다. 그러자 용마바위에서 용마가 벼락같은 소리를 내면서 뛰어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용마는 날개가 달렸거든. 그렇게 용마가 뛰어내린 곳이 너럭바위였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겠지. 내 어릴 때는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딱 4개였다. 지금보면 공룡발자국 화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지금은 완전히 물에 잠겨서 못본다. 산아래 내려오는 전설이다.”

삿갓바위 이야기도 있다. 어른들이 ‘사태김’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삿갓바위도 있었다. ‘사태김’은 산사태처럼 돌무더기가 자주 흘러내리는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만 된다. 어른들은 그 길을 오갈때도 늘 조심하라고 했다. 삿갓바위 옆에는 범굴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 굴을 범굴이라고 했다. 체구 작은 사람은 직접 그 굴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더라. 지진이 와서 그랬는지 다 떨어져 나갔다. 삿갓바위 옆에 묘도 하나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흔적도 없어졌다. 오소리 잡겠다고 그 굴을 다 팠는 거 같다. 옛날에는 오소리 두마리만 먹으면 폐병까지 고쳤다고 했다.”



대곡천에는 화전놀이나 천렵을 하던 추억도 서려있다. 힘든 농삿일을 잠시 잊고 마을사람들 모두가 한날 한 곳에서 시름을 잊고 나들이를 즐겼다고 했다. 화전놀이는 모내기를 끝내고 좋은 날을 잡았다.

“반구마을 사람들은 천전리각석 아래쪽에서 놀았다. 자갈밭과 백사장처럼 좋았다. 고기가 엄청스레 많았고, 잡기도 좋았다. 한실마을 사람들은 ‘인고부’에서 놀았다. 용마바위 전설이 서려있는 그 너럭바위 인근이다. 한창 흥이 오르면 여자들도 술을 마셨다. 화전놀이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태김’ 지나서 ‘꽃자치’를 지나야했다. 일종의 꽃밭이었다. 물가에 달맞이꽃이 한창 피었다. 여흥에다 취기까지 올라서, 꽃자치에 다다르면 노래를 부르고 꽃을 따서 머리에 꽂고 했던 기억이 난다.”

먹거리가 귀한 시절에는 대곡천 고기잡이도 큰 잔치였다. 굵은 장어도 많았다. 남정네들 고기 잡을 때는 아낙들도 따라왔다. 잡은 고기가 워낙 많아 마을사람들이 고루 나눠가기도 했다.

“낚시나 그물이 아니라 제피나무로 고기를 잡았다. 제피나무 굵은 가지를 껍질을 벗겨서 가마솥에 달달 볶았다. 그걸 도구통(절구)에 찧었는데 그 냄새가 엄청스레 독했다. 요새같이 마스크가 있기를했나, 수건으로 얼굴을 똘똘 싸매서 빻았다. 혼자서는 작업을 못했다. 질식할 것 처럼 아롱아롱했다. 그거를 체에 쳐서 가루를 만들었는데, 대곡천 물에 그걸 풀면 개울 아래쪽에서 고기들이 허옇게 배를 내밀고 떠올랐다. 사연댐 막기 전에는 다 그렇게 고기를 잡았다. 쪽배에 다 싣지도 못할 정도로 많았다. 아낙들은 정신없이 그 고기를 주웠다. 큰 놈들 중에는 잠시 기절했다가 다시 또 살아서 도망갔다. 그 전에 후딱 잡아야했다.”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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