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사이렌의 노래와 도구적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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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사이렌의 노래와 도구적 이성
  • 경상일보
  • 승인 2021.08.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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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엽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현대사회는 역사적으로 가장 진보된 사회일까? 현대인은 신분제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과학기술문명 덕택으로 윤택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절대적 빈곤 속에 놓여 있고,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고 있으며, 기업은 점차 거대해지는 반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지나친 경쟁으로 지쳐가고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현대인은 더 선량해지기 보다 더 교활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돈을 벌고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타인과 경쟁해야하고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슴은 차가워야 하고 머리는 늘 계산해야 한다. 현대인은 자기 내면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동시에 합리적 계산에 능할 때 비로소 ‘윤택한 생존’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연적 본성을 이른바 ‘도구적 이성’에 굴복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도구적 이성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계산해내는 이성이다. 예컨대 ‘돈 벌기’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수단으로 삼을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 도구적 이성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1947)에서 <오디세이아>의 사이렌 신화를 통해 ‘도구적 이성’에만 매몰된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바다의 요정 사이렌은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도취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사이렌의 노래를 들어서는 안 된다. 사이렌의 노래에 취해 노 젓기를 멈추게 되면 물살 빠른 협곡에서 배가 난파되어 모두가 제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에 맞서 오디세우스는 마녀 키르케가 알려준 대로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하고,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 갈 것을 명령한다. 그래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이 협곡을 무사히 빠져나가게 된다. 살아남고 싶은 자는 사이렌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는 듣는 감각과 감성을 거세할 때에만 살아남는 것이다.

노 젓는 부하들은 현대인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인은 자기 내면의 욕구와 감성에 귀를 닫은 채, 예컨대 아름다운 예술의 향유로부터 소외된 채, 생존을 위한 노동에만 종사해야 한다. 효율적 수단만을 생각하는 도구적 이성을 무기 삼아, 더 많은 부를 위해 한눈팔지 않고 끊임없이 노동을 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이렌의 노래를, 다시 말해 내면의 감성의 울림을 듣는 행복을 향유해서는 안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적 인간 삶의 모순적인 현실이다.

지배자 오디세우스는 자기 몸을 돛대에 묶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결박했기 때문에 그 노래를 표피적으로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저 부하들과 달리 자신의 감성을 만나고 예술을 향유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기 몸과 마음을 결박한 효율적인 자기 통제를 통해서이다. 따라서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피상적인’ 행복일 뿐이다. 이러한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현대인의 또 하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제적 부의 증대가 삶의 최고의 목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도구적 이성은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도구적 이성의 강화는 현대인을 ‘이해타산을 위한 계산기’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마저도 경제적 이익 창출의 도구로 전락시키며, 사회를 경제적 효율성과 유용성만이 지배하는 ‘쇠우리(the iron cage)’(막스 베버)로 변질시켜 가고 있다.

인간은 ‘귀를 틀어막거나 자신을 결박한 채 부단히 노 저어 가라’는 도구적 이성의 책략을 따를 때만 생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결핍된, 행복하지 못한 삶은 결국 언젠가는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허무주의를 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교활하게만 만드는 도구적 이성의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면서 함께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사회가 보다 진보된 사회일 것이다.

이상엽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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