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최선노력조항, 지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태바
[경상시론]최선노력조항, 지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 경상일보
  • 승인 2021.09.06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준희 미국변호사

국내에 본사를 둔 기업을 경영하는 당신에게 미주 사업을 수행하는 자회사가 현지에서 사업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생겼다고 하자. 조달방식은 만기 5년의 무담보 일반대출(Term Loan)로 하고, 구체적인 조달조건을 대주(貸主)인 현지은행과 협상하던 중 당신은 돌연 본사명의의 서류 하나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니 대출기간 중 차주(借主)인 자회사의 경영권을 유지할 것과 자회사로 하여금 향후 체결될 차입계약의 이행을 확실히 하는데 필요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한 페이지로 된 영문 레터이다.

모회사 보증(parent company guarantee)도 아니고, 마땅히 해야 할 계약이행을 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내용의 이 레터, 서명해도 될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계약이나 앞서 예시에서 제시된 회사 명의의 레터와 같은 처분문서상의 최선노력조항이 어느 정도의 법적 구속력을 갖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최선노력조항(best efforts clause 또는 best endeavours clause)은 계약상 채무이행과 관련하여 채무자가 말 그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문구를 명시한 계약조항을 말한다. 거래법 분야의 사례와 그 미치는 영향이 큰 미국에서 처음 생겨났다고는 하나, 영국과 호주 등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도 관련 분쟁을 다루는 판례가 이미 많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계약실무에서는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조항이다.

다른 계약조항 대비 최선노력조항이 갖는 독특성은 ‘최선’이라는 말과 ‘노력’이라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구체화하여 이를 불이행한 당사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와 관련해 매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 조항의 탄생지이자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미국에서조차 뉴욕 주의 경우 그 법적 효력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데 비해 일리노이 주는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등 주(州)별로 인정여부에 대한 엄격성을 달리하는 식이다. 관련 분쟁을 다룬 각국의 판례를 살펴보아도 실무상 사용빈도에 따라 법적 효력을 인정하는 정도가 다르다. 결국 최선노력조항은 그 법적 효력여부를 판단하는 획일적·보편적 기준도 아직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상 최선노력조항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 구속력 여부와 위반에 따른 위험을 무엇을 근거로 판단해야 할까.

대체로 최선노력의 대상행위가 훈시적, 추상적, 선언적이 아닌 구체화된 문구로써 계약상 명시되어 있고, 대상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합리적 신뢰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크다면 그 법적 효력도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선노력조항과 관련한 또 다른 쟁점은 그 법적 의무의 내용을 어디까지로 한정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최선노력조항이 대상으로 하는 채무는 특정한 결과를 달성해야 하는 결과채무가 아닌 이를 위해 노력할 수단채무의 일종인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채무자에게 무한의 노력을 요구할 여지도 있으나 이는 어느 모로 보나 불합리하다. 결국 이는 당사자 간 의사 및 상거래 관행을 고려한 합리적 채무자를 상정하고, 그 합리성이 유효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때 해당 사안에서 마땅히 행했어야 할 최선의 노력이었다는 구체적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시로 돌아가서 레터 속 최선노력조항을 다시 살펴보자. 편의상 다른 조건들이 생략되어 있으나, 이 조항은 차입계약상 원리금 상환의무의 이행에 필요한 모든 합리적 방법을 추구할 것을 서명기업에 요구하는 법적 의무를 강제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해당 레터의 서명여부는 해당 의무의 감수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에 있어 대표이사 뿐 아니라 이사회 의결사항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더욱 신중히 판단되어야 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울산 앞바다 ‘가자미·아귀’ 다 어디갔나
  • 축제 줄잇는 울산…가정의 달 5월 가족단위 체험행사 다채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