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가 왜 운문댐 물을 먹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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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우리가 왜 운문댐 물을 먹어야 하나
  • 경상일보
  • 승인 2021.09.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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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겸 전 울산 남구청장

낙동강 물관리위원회는 지난 6월 반구대 암각화 보호를 위해 대구·경북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조건으로 운문댐 물을 울산에 공급하기로 했다. 송철호 시장은 운문댐 물을 공급받게 되어 사연댐 수문설치를 통한 반구대 암각화 보존이 가능해졌다고 자화자찬이다. 이에 울산시는 7월1일 떠들썩하게 반구대암각화 세계유산추진단까지 발족했다. 하지만 8월6일 낙동강 통합물관리 보고회에서 대구·경북지역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다. 운문댐 물 공급방식이 시작부터 막혔다. 무엇보다 울산시민들은 과연 온전히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을지,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정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 크다. 만약, 문재인 정권과 송철호 시장이 공약이행 강박으로 정치적 시간표에 쫓겨 섣부른 결정을 한 것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악수일 따름이다.

반구대암각화와 사연댐 식수문제는 늘 혼선을 부추긴다. 울산시가 반구대암각화 관광사업에 욕심을 낼수록 정부는 사연댐 식수문제를 양보하도록 강요해 온 것이 갈등의 원인이다. 반구대암각화는 국가 문화재다. 관리주체도 당연히 국가다. 그래서 울산이 먼저 관광사업에 대한 속내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 이에 반해, 사연댐 물 공급은 울산에 국한된 문제다. 비록 한국수자원 공사가 관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울산시민이 먹는 물이다. 정부는 댐 관리 잘하고, 울산시민들에게 맑은 물 공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정부가 문화재 보호든, 어떤 이유로든 사연댐 식수공급을 중단하려면 동일 규모와 수질을 갖춘 댐을 건설해서 대체해주면 된다.

문제는 울산시가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개입하면서 발생한다. 어차피 정부가 반구대 암각화 해결해야 함에도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요구하자 정부는 식수문제 양보를 걸고넘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울산시가 양보하지 않으면 문화재 보호에 비협조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압력을 행사한다. 20년 동안 왜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결과적으로 운문댐 물 공급 방식은 정부입장에서 흡족할지 모르지만 울산시민들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은 것과 다름이 없다.

울산시는 사연댐 여수로 수문 설치 타당성 용역 중이다. 처음부터 잘못 끼운 단추다. 국내 최고수준의 댐건설 전문업체는 2017년 울산시가 의뢰한 용역보고에서 수문설치과정에서 댐 붕괴위험이 매우 크다고 보고한 바 있다. 오히려 수문을 설치하는 것보다 댐을 새로 짓는 게 낫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방식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이나 식수문제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사연댐 수위를 낮추더라도 모세관 현상 때문에 장기적으로 반구대 암각화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울산시는 올바른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면, 반구대암각화 보존은 정부에 맡겨두고 식수해결에 매진하는 것이 맞다. 시민들의 식수를 담보로 얻어낸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 지방자치시를 역행하는 결정이다. 50년간 공급해온 사연댐 식수를 일방적으로 끊고, 대신, 운문댐 물을 공급하는 방식이 과연 환영할 일인가. 반구대암각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정치적 퍼포먼스나 벌일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울산시는 운문댐 물 공급방식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시민들 의견부터 묻는 것이 순서다. 필요하다면 숙의민주주의 방식을 통한 시민투표를 거치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다. 우리 물인 사연댐 물을 양보하는 대가로 남의 물인 운문댐 물을 구걸하다시피 얻어 오는 것이 온당한지 말이다.

울산시민들은 걱정이 많다. 사연댐 수위 조절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사연댐을 완전 개방해서 선사문화 생태로 복원하고, 이에 버금가는 수원지를 개발하는 것이 답이다. 아니면 회야댐의 저수량을 높이거나, 최소한 대곡댐 저수량을 키워 물을 사연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상정수장으로 보내는 정도라야 울산시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국가 정책기조에 좌우된다면, 사연댐 물은 울산 시민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

김두겸 전 울산 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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