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67)]페르시아의 영광,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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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67)]페르시아의 영광,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 경상일보
  • 승인 2022.03.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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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20년 전에도 이란을 여행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그 위험한 곳에 왜 가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야했다.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험악한 나라로 인식된다. 고집이 세고, 과격하고, 배타적이며, 엄격한 이슬람 율법 등의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잘못된 선입관은 대부분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건축적 유산에 관한한 이란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다. 50여개 나라를 돌아다닌 후에도 이란의 건축유산은 여전히 첫 손가락에 꼽힌다.

이란을 페르시아와 연결 지을 정도면 세계사적 안목이 제법 깊은 사람이다. 페르시아. 정확한 역사적 지식이 없어도 신비감이 느껴지는 이름이 아닌가. 온갖 신기한 물건이 가득한 시장, 보석으로 치장된 신비로운 왕궁, 그리고 아름다운 공주의 전설이 연상되는 곳이다. 무시무시한 이슬람 무장 세력과 페르시아의 신비감이 교차하는 양 극단의 이미지는 결국 이 시대의 국제관계가 조장한 증오의 표현일 것이다.

이란은 중동에 있지만 아랍민족과 뿌리부터 다르다. 그들은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코카서스산맥에 무리 지어 살던 아리안족이 남하를 시작한 것은 기원전 1000년경이다. 이란의 남부에 정착한 페르시아 족은 주변국들을 평정하면서 점차 강력한 국가를 이루었으니, 그 지도자가 바로 아케메네스(Achemenes)로서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작이다.

기원전 6세기경 다리우스(Darius)는 페르시아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면서 당시 지중해권을 지배하던 그리스와 패권을 다투게 된다. 동쪽으로는 인더스강까지, 서쪽으로는 그리스 반도, 남쪽으로는 이집트를 넘어 리비아에 이르기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영토를 지배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그가 바로 신성한 도시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건설한 인물이다.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800㎞, 쉬라즈(Shiraz)로 가는 길은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이다. 쉬라즈 시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여를 달리면 나지막한 돌산 아래 거대한 평원이 전개된다. 놀랍게도 우거진 숲과 푸른 경작지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지하수로를 통해 거대한 오아시스가 조성된 곳이다. 민둥산에 기대어 거대한 오아시스 평야를 바라보는 곳, 바로 페르세폴리스의 입지환경이다. 그곳에 2500년 전 고조선 시대의 도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 뒷산을 깎고 축대를 쌓아 평지로 만들어 건설한 신도시 페르세폴리스는 사원과 궁전의 거대한 복합시설이다.
▲ 뒷산을 깎고 축대를 쌓아 평지로 만들어 건설한 신도시 페르세폴리스는 사원과 궁전의 거대한 복합시설이다.

페르세폴리스는 도시규모를 갖는 사원과 궁전의 거대한 복합시설이다. 이미 세 곳의 수도와 왕궁을 가지고 있었던 페르시아가 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야 했을까? 그 첫째 이유는 영토 확장에 따라 끝없이 불어나는 제국의 부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제국에 위상에 걸맞은 의례용 공간과 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도시로서는 빈번한 외국 사신과 개선장군 등을 맞이하는 의전행사와 국가적 종교행사를 치르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웅장하고 신성한 의식의 장소를 목표로 새로운 도시가 계획된 것이다.

페르세폴리스는 뒷산을 깎고 축대를 쌓아 평지로 만들어 건설했다. 13만㎡에 이르는 평지를 조성하기 위한 석조축대는 거의 성벽과 같은 높이를 갖는다. 높은 석축은 장소를 우러러 보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축대는 마야나 잉카 유적처럼 거대한 석재들을 접착재도 없이 엇맞춤으로 쌓았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명문이 남아있다. “이 땅은 아후라마즈다께서 내게 주신 아름답고, 말들이 풍족하고,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페르시아 땅이다. 아후라마즈다께서 내게 명하노니 이 땅을 적들과 기근과 거짓으로부터 보호하라 하셨도다. 이곳에는 한 번도 성채를 세운 적이 없으니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내가 세우노라…. 그리하여 내가 이곳을 아름답고, 성스럽게 세우노라.” 아후라마즈다는 조로아스터교의 주신, 즉 하느님이다.

완만하고 긴 계단을 통해 축대를 오른다. 양쪽으로 갈라져 계단참을 돌아 다시 만나게 하는 계단 형식은 아케메네스 양식의 독특한 성격이다. 축대가 높지 않음에도 단수가 많은 이 계단은 완만한 경사로서 말을 탄 채 올라갈 수 있도록 디자인 된 것이다. 거대하고 폐쇄적인 성문이 없이도 세속과 신성한 도시를 구분하고 연결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비록 온전하게 남아있는 건물은 드물지만, 문안의 전경은 대제국의 위용과 신성함을 실감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다. 질서 정연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가로망이 연결되고, 거대한 건물군들이 조직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다만 중국처럼 직선축 상에 반복적으로 영역을 배치하는 형식과는 다르다. 메소포타미아 고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유기적 배치에 가깝다.

높은 기단과 주랑현관(portico)에서부터 페르시아 건축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중요한 건물들은 늘씬한 석재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다. 기둥은 종려나무 잎과 열매를 표현하는 장식과 형태를 갖는다. 기둥으로 채워진 방은 생명력이 넘치는 신성한 숲, 바로 오아시스의 재현이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에서 공간을 빽빽이 채우던 어마 무시한 두께의 돌기둥을 페르시아인들은 늘씬한 모습으로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넓고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황소나 사자머리를 쌍으로 조각한 주두형식도 페르시아만의 독특한 양식이다.

페르세폴리스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선대문명을 통합하여 발전시킨 독특하고 위대한 걸작이었다. 찬란했던 고대 페르시아의 영광은 알렉산더 침공이후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 문명의 유전인자는 중동 이슬람 문명으로, 티무르 제국과 무굴제국을 통해 초원문명으로 이어졌다. 한 티무르 역사학자는 이렇게 외쳤다. “그 영광을 의심한다면, 그들이 남긴 유산을 볼 지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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