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유명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권은 국가 형성을 위하여 개인이 국가에 반납한 권리로서 오직 개인의 자유와 안전보장을 위해서만 사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형벌권은 인간 자유를 위한 근본적인 권리이므로 정치적 이해관계나 수사기관 간의 밥그릇 다툼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형벌권의 일부인 수사권 개편에 대한 논의는 수사기관의 전문능력, 인권보장 장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부패에 대한 자정 기능, 기관 간의 견제와 협력 방안 등을 중심으로 국민의 안전과 기본권보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전문가와 각계각층의 논의를 통해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보해야 함은 당연한 일머리이다.
검찰은 약 70년간 수사의 주체로서 정치적 격랑 속에서도 거악을 처단하고 수많은 민생 사범을 처리하여 국민의 안전보장과 인권보호의 역할을 비교적 잘 수행해 온 것은 틀림이 없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정치화, 유전무죄의 전관예우, 스폰서 검사로 상징되는 기득권과의 담합, 표적수사와 별건수사, 자정기능 상실, 폭탄주로 상징되는 줄 세우기 문화 등의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경찰의 수사능력이 점차 향상됨에 따라 지나치게 비대해진 검찰 수사권을 견제하려는 수사권 개편 논의가 꾸준히 진행돼 왔다. 약 1년 전 문재인 정부에서는 6대 범죄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법경찰이 단독으로 수사 할 수 있게 하고, 사법경찰과의 지휘괸계를 협조관계로 바꾸는 일대 개혁을 단행하여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3·9대선에서 여당이 패하고 현 정부와 맞서던 검찰총장 출신의 후보가 당선되자 여당의 강경파들에 의해 소위 ‘검수완박’ 즉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이라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설립하는 개편안을 들고나와 새 대통령 취임 전까지 입법화를 시도하고 있다. 명분은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선진국형으로 수사권을 재편한다는 것이지만 정권을 잃은 집권당이 검찰의 칼날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로 의심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절대 의석을 가진 여당이 오직 다수결이라는 쪽배에 의지하여 국가수사권 개편이라는 태평양을 단 며칠 만에 건너려 하는 불안한 모양새이다.
민주주의에서의 의사결정은 다수결에 의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반드시 정의나 진리와 일치할 수 없다는 한계 또한 분명하다. 가장 민주적이었던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 의하여 히틀러의 나치당이 등장했다는 점이 다수결 제도의 한계로 자주 인용된다. 합리성에 근거한 대화와 토론 등의 숙의 절차 없는 단순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정의와 무관한 떼법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사회계약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존롤스(John Rawls, 1921~2002)는 형식적인 다수결에 의한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입법을 시민불복종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유념할 만하다.
국회는 다수결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다수결로 입법하는 이중 다수결 구조이기 때문에 그 결정이 민의나 정의와 멀어질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회법은 법안의 상정부터 의결까지 숙의를 위한 다양한 절차적 규정을 두고 있다.
거대 여당은 검찰청법 등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날치기, 위장탈당, 의장의 부당개입, 회기 쪼개기 등 온갖 편법과 탈법을 동원하여 국회법의 절차적 민주주의 이념을 철저히 외면했다. 내용 또한 졸속 처리로 인한 허점이 많고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전체적으로 반헌법적 반민주적 입법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헌법학계의 태두이신 허영 교수는 “입법 구테타”라고 일갈했다.
이 졸속 법안이 퇴임 일주일 남은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여 지게 됐다. 대통령은 이 법안을 공포하거나, 법률안을 거부하거나, 새 대통령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가혹한 선택을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생을 인권신장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 변호사다. 젊은 시절 수없이 낭송했을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다시 읊는 심정으로 모든 정파적 이해관계를 날려 보내고 알곡만을 가리는 선택을 하여 헌법수호 의무를 다할 것으로 믿어본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