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67)]제주 불탑사 오층석탑
상태바
[배혜숙의 한국100탑(67)]제주 불탑사 오층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2.05.27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배혜숙 수필가

와아, 제주스럽다. 저절로 나온 말이다. 제주를 온전히 품은 불탑사 오층석탑은 우리나라 유일의 현무암 석탑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육지에서 익히 보아온 화강암 석탑과는 보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다른 별에서 ‘툭’ 떨어진 것처럼 별스럽다. 색깔은 적흑색이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명품 패션들이 잘 쓰는 차콜 그레이 빛’이라고도 표현했다. 흑색이지만 오묘한 빛깔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불탑사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창건된 원당사의 옛 터에 있다. 삼별초의 항쟁이 끝나고 탐라는 100년 동안 원나라의 직할령으로 지배를 받게 된다. 그 시기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절집과 함께 탑도 건립되었다.

제주도는 신들의 고향이다. 대왕격인 설문대할망을 비롯하여 물과 불, 바람을 다스리는 1만8000에 달하는 신이 있다. 현무암 석탑은 제주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신이 되었다. 그 앞에서 바다로 나간 지아비가 무사하기를 기원했고 물질나간 어미가 파도에 쓸리지 않기를 바라며 마른 손을 비볐다. 또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비는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

이른 아침이라 절터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넘친다. 묵은 팽나무 두 그루가 뿜어내는 산뜻한 초록과 함께 햇빛 무량하여 혼탁한 마음을 맑게 비워 낸다. 화산석을 척척 올려 쌓은 오층석탑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색감, 질감, 미감이 살아나는 오월이다.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탑을 껴안아 보고 싶지만 욕심을 거둔다. 느낌은 알 것 같다. 올레길에서 만난 밭담을 여러 번 그러안아 보았다. 명월리의 소박한 가정집의 까만 돌담아래 핀 낮달맞이꽃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고 김창열미술관 돌담에 등도 기대어 보았으니까.

석탑을 저만치 두고 무연히 바라보는데 백석의 ‘여승’ 시 구절이 지붕돌 귀퉁이마다 걸린다. 그렇구나, 배우 강수연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탑의 감실에 꽃 한 송이 올린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가거라가거라 열반의 저 언덕으로.

배혜숙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대형 개발로 울산 해양관광 재도약 모색
  • [기자수첩]폭염 속 무너지는 질서…여름철 도시의 민낯
  • 신입공채 돌연 중단…투자 외 지출 줄이고…생산직 권고사직…허리띠 졸라매는 울산 석유화학업계
  • 아마존·SK, 7조규모 AI데이터센터 울산에
  • 울산, 75세이상 버스 무료 교통카드 발급 순항
  • 방어진항 쓰레기로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