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것은 일생 일대의 중요한 큰 결심이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할 때 대부분 무엇을 먼저 생각할까? 누군가는 건강한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를, 또 누군가는 내가 좋은 부모가 되어 아이를 바르게 지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절대 대다수의 부모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는데 들어가는 돈을 감당할 수 있을까를 걱정할 것이고, 나아가 내가 낳은 아이가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이를 낳기로 결심할 때 걱정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사랑으로 새생명을 맞이하는 것인데 ‘기대’보다 ‘걱정’이 많아진다는 현실이 조금은 아프게 다가온다.
세상이 점점 더 살기좋아지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아이낳는 것에 대한 ‘걱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옛날에는 ‘다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이야기들 했고, 사는 것이 힘들어도 아이 가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았는데, 최소한 밥 굶는 사람은 없다는 요즘 ‘아이 낳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더 커졌다. 그 거부감은 ‘아이가 잘 살 수 있을까. 또 내가 잘 기를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뿌리가 있는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이낳기’에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이 사라진다. 아이낳기가 애국이다’ 말은 참 많은데, 막상 아이를 낳으려 결심하고 상황을 보면 어느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취직하기 어렵고 어렵게 취직을 해도 평생직장을 기약하기 어렵다. 먹는 것 입는 것 아껴가며 돈을 모으지만, 아무리 모아도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이 남의 일 같다. 그저 한 달 벌어 한 달 버티는 생활의 연속이다. 나라가 아이 기르는 것을 책임지겠다고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면 부모가 다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도리어 ‘능력도 안되는 것이 왜 아이를 낳았냐’는 타박을 듣기 쉽다. 아이 낳는 것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나아가 ‘능력없는 부모 아래 태어날 아이가 미안하다’는 마음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이 줄어드니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그저 공염불이다.
고대 그리스의 강국이었던 스파르타는 인구감소로 민족 자체가 사라졌다. 스파르타는 시민들이 자기 비용으로 군사장비를 구매하여 무장할 수 있어야 시민권이 유지되는데 아테네와의 전쟁에 이기면서 강국이 되고, 강국이 되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경제 발전의 결과는 심각한 빈부격차와 중산층의 몰락이었다. 몰락한 중산층은 자기 비용으로 군사장비를 구매할 수 없었고 스스로 시민의 지위를 포기해야했다. 그런 상황에 절망한 젊은이들은 출산을 포기했고, 이로 인해 군인이 될 수 있는 스파르타의 시민 수가 줄어들어 결국 민족 자체가 존속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스파르타와 현대 우리 사회가 웬지 모르게 닮아있다. 내 아이에게 희망과 더 나은 삶을 바랄 수 없고 현재의 삶 자체가 버거워 아이낳기를 포기하는 부모의 마음.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그 부모의 마음은 겹쳐보인다. 스파르타의 몰락 중산층도 스파르타의 강건함으로 굶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몰락 중산층도 최저생계비 등 국가의 보전이 있으니 생존자체를 위협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굶지 않는다고, 단순히 생존이 가능하다고, 살만한 사회는 아니다. 살만한 사회는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이다. 판도라의 상자 마지막에 남아있던 가장 소중한 것이 ‘희망’이었던 것처럼, ‘살만한 가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희망’이다.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가 자신의 희망과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그 부모의 상황에 지배받지 않고 자기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이 있는 사회가 바로 ‘희망이 있는 사회’이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이다. 그러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지금의 상황이 힘든 부모세대도 다음 세대의 성공을 기약하며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비록 자신은 힘들게 살아도 희망을 찾아 노력하는 아이를 보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 것이 부모에게도 삶의 의미를 주는 ‘희망’이다. 아이에게 주어질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본인 스스로 당장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절망이 저출산의 본질적 문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문제는 더 이상은 미뤄서는 안되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