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 TV,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최근 자주 올라오는 단어가 있다. 오픈런! 유명 맛집에 줄을 서고, 인기 아이돌 공연 티켓팅에 밤을 새고, 백화점 명품매장에 줄서는 풍경은 이제 그닥 낯설지 않다. 10여 년 전 E마트의 ‘한판피자’와 L마트의 ‘통큰치킨’ 열풍부터 한정판 옷과 운동화, 먹거리 등 일상의 많은 분야에서 뛰고 줄을 서면서 소비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팬데믹 2~3년을 지나면서 비대면 모바일 쇼핑의 활성화로 우리나라 소비의 중심이 4050에서 2030세대로 전환되고 있다. 이전에는 유명브랜드의 인기 있는 제품들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았음에도 정보를 독점하고 있던 각 브랜드의 VIP 및 단골 구매자인 소수의 4050 중심으로 구매되어왔기에 매장 오픈 전부터 줄을 서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2030 쇼퍼들은 정보력과 활동력을 앞세워 원하는 제품이 있으면 국내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 구매대행과 직구를 통해 전 세계에서 구매를 하는 왕성한 구매력으로 소비의 중심이 되고 있다. 기존의 4050에 못지않은 경제력을 갖춘 2030 쇼퍼들은 작은 트렌드도 문화로 발전시키는 대단한 힘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들에 의해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만들어진 문화로는 ‘홈바’나 ‘홈텐딩’, ‘위스키 오픈런’이 있다. 집을 바(bar)처럼 꾸며놓는다는 합성어인 ‘홈바’, 집에서 칵테일을 만들어 마신다는 합성어인 ‘홈텐딩’이 팬데믹과 함께 급속하게 늘었다. TV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술 마시는 장면을 자연스레 유튜브와 TV방송에 담게 만들고, 젊은 연예인들이 위스키를 즐기는 장면이 ‘플렉스’라는 트렌드에 얹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유명 싱글몰트 위스키를 사기 위한 ‘위스키 오픈런’도 흔한 풍경이 됐다.
이같은 문화는 급감하던 위스키의 수입 및 판매량까지 늘리는 ‘위스키 열풍’이라는 뉴스를 만들어 냈다. 관세청에 따르면 코로나 펜데믹 시작 즈음 13.9% 감소했던 위스키(스카치 기준) 수입량이 2021년 1월부터 10월까지 11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2%나 증가했다. 2020년 1년 총 수입액인 930억원을 10개월 만에 훌쩍 뛰어넘었다고 한다. 올해(2022년) 1월부터 11월까지 위스키 수입액은 약 1억5000만달러(약 1830억원)로 전년보다 37%가 또 다시 늘었다.
위스키 구매처도 남대문수입상가 등 마니아들만의 장소를 벗어나 대중화하고 있다. 위스키 전문 바틀숍이 서울부터 지방까지 많이 생겨나고,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도 위스키 공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디테일에서는 위스키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27.5%나 상승했다고 한다.
2030의 위스키 문화는 이전의 우리나라 술문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과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블랜디드 위스키에서 개성과 취향을 추구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로 종류만 변한 것은 아니다. 위스키를 한자리에서 몇 병씩 마시던 이전과는 달리, 2030세대들은 1oz 한잔으로 몇 시간씩 향과 맛을 즐기며 마신다. 희귀한 위스키를 모으는 ‘주테크’도 등장한다. 맛과 향을 연구하고 위스키의 투자를 위해 증류소의 역사와 위스키 장인들의 인생을 공부하는 완전 다른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항상 대한민국의 새로운 세대들은 변화로 발전과 창조를 만들어 낸다. ‘위스키 오픈런’을 단순히 술을 사기 위해 달리고 줄을 서는 행동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흥청망청으로 대표되던 구세대의 상징이 아닌 개성과 취향을 추구하면서 노력과 연구를 함께 하는 새로운 장르로 변화한 술문화로 봐야한다. 다방을 카페로 변화시키고, 스파게티를 파스타로 변화시키고, 커피를 아메리카노로 변화시키면서 세기의 변화를 이끌어냈듯이 위스키를 싱글몰트로 변화시킨 새로운 문화가, 눈살 찌푸리게 만들던 대한민국의 술문화를 좀 더 정돈된 술문화로 이끌어 가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정영진 갤러리 리아 대표 본사 차세대CEO아카데미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