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회장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형과 마룻바닥 아래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조 회장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한 장면이었다.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조 회장의 마지막 기억이다.
시간이 흘러 조 회장이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무렵, 어머니와 형이 갑자기 어딘가에 다녀왔다. 이 날은 울산 보도연맹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한 날이었다. 조 회장은 어머니와 형의 대화로 어렴풋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1961년 군사 정권이 들어섰고, 유족들이 어렵게 마련한 백양사 앞 합동묘가 파헤쳐져 묘지와 위령비가 모두 훼손됐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들의 유해도 사라졌다.
조 회장은 항의하던 유족 간부들이 끌려가 징역 5~6개월을 선고받는 등 억압당하는 것을 보고 다른 유족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소문이 나 불이익 당할까봐 수소문도 하지 못하고 지낸 세월이 이후 10여년에 달했다.
유족들은 성장 과정도 험난했다. 가장이 없는 집에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고, 연좌제 명목의 신원 조회 제도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어른이 됐다. 취업, 승진, 여행 모든 부분에서 제한이 걸렸고 국가에서 불시에 시찰을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4살 아이는 77세 노인이 됐다. 조 회장은 “유족들 대부분은 빈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며 “희생자들의 자녀 대부분이 70~80대가 됐다. 시간이 없다. 바라는 건 고인의 명예회복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울산 보도연맹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은 약사동 309-1 일원에 세워져있다. 유족들은 추가로 역사 공원까지 조성해 후대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노력으로 2기에서 희생자 60명이 진실규명됐지만 아직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유족도 많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울산에서만 140건이 접수됐고 132건에 대한 조사가 개시된 만큼 추가 희생자가 더 나올 수도 있다. 진실화해위에서는 올해 12월9일까지 추가 신청을 받는다.
강민형기자 min007@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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