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공학과 인문학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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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공학과 인문학의 대화
  • 경상일보
  • 승인 202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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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수진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교수 운영지원처장

필자는 화학공학을 전공한 공학자이다. 화학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 시절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학 입시에서 받은 점수와 내신등급을 바탕으로 취업에 유리한 진로를 정했기 때문에 나의 선택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필자의 책 읽기와 사고방식은 꽤나 편향되어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왜곡된 부분이 많았다. 특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핵심 역할은 공학자이며, 인문학은 단순한 학문이라 가볍게 생각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문과대학에 다니는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로의 전공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했던 탓에, 가벼운 이야기에서 시작된 토론도 각자의 다른 견해로 인해 다투는 날이 많아졌고, 사이가 멀어진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필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학문은 공학이라 철저하게 믿고 있던 필자의 독서 성향을 바꾸는 계기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사람, 특히 고전과 인문학 서적에 대해 남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인문학 서적을 접하기 시작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하던 날, 책 표지와 내부가 너무 깨끗한 상태여서 놀랐고, 더불어 책의 두께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대출 기록을 살펴보며 내가 이 책의 첫 번째 대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인문학 서적을 접한 후 필자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어려운 가정환경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결여돼 있던 자존감 회복이다.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살아가는 이유와 목표가 명확해졌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심이 깊어졌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유연해지고 넓어졌다. 요즘은 청년시절 읽었던 <논어>를 다시 읽고 있다. <논어>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동양고전이다. 청년시절 <논어>를 읽을 땐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문장들은 어렵고, 삶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쉰을 넘긴 지금은 <논어>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르침과 지혜가 마음깊이 스며든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와 같은 누구나 아는 단순한 문장도 이제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로 다가온다. 고전과 인문학 독서는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니라, 인생의 길잡이이자 마음의 안식처를 만나는 일임에 틀림 없다.

한국폴리텍대학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자존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격증 취득에만 집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다. 우리의 현실이 자격증 취득과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분위기이고 학생들의 현실적인 부담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또한 자격증은 취업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필요한 자격증은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소통능력, 자기계발 등 다양한 역량을 함께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격증 취득과 함께 고전·인문학 책 읽기, 교양·봉사·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경험과 자기계발이 합해졌을 때 더 큰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업 면접에서도 자신감을 주고, 실제 업무에서도 문제해결과 소통 능력을 키워준다.

필자는 시간강사로 일하던 시절, 학생들이 자격증 준비에만 매몰되지 않고 더 넓은 시선과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학기가 끝날 때마다 성적, 출석 그리고 수업 충실도 등을 고려하여 학생 두 명을 선정해서 양장본 인문학 서적을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 박봉의 시간강사였기에 경제적으로 부담이었지만,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 공학도에게 선배로서 줄 수 있는 작은 응원과 격려라는 마음으로 10여년간 꾸준히 이어갔다. 단순한 책 한 권을 넘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는 소중한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잠시 중단했던 인문학 서적 선물을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다. 학교라는 공간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장소가 아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곳이어야 한다. 직업전문교육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에서도 그것은 예외일 수가 없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더 나은 변화가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구수진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교수 운영지원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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