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와 경북 구미가 벌이고 있는 물 전쟁 여파가 울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울산 시민의 먹는 물 확보는 물론 반구대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까지 지장이 우려되는 가운데, 대구가 대체 수원을 찾더라도 운문댐 물 배분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신규 수원 확보에 대한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18일 울산시 등에 따르면, 대구시는 지난 17일 국무조정실과 환경부, 경상북도, 구미시,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맑은 물 나눔과 상생 발전에 관한 협정’ 해지를 통보했다. 앞서 대구와 구미는 지난 4월 협정을 체결하면서 구미 해평취수장에서 하루 평균 30만t을 추가 취수해 대구·경북에 공급하고, 환경부·수자원공사가 구미에 매년 100억원의 상생 지원금을 지원한다는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파열음이 일기 시작했고, 결국 대구는 구미의 귀책 사유로 이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협정을 해지했다. 대구는 구미 해평취수장에서 용수를 공급받는 대신 안동댐 등에서 관로를 연결해 수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대구와 구미의 협정 체결 이후 운문댐 물의 울산 공급량을 놓고 대구와의 협의를 준비하던 울산은 날벼락을 맞게 됐다.
당초 환경부는 지난 6월30일 낙동강 안전한 먹는 물 공급체계 구축 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뒤 울산과 대구간 협의를 주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미 당시부터 불거지고 있던 대구와 구미의 기싸움 탓에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대구가 협정을 전격 해지함에 따라 환경부도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대구가 대체 수원을 찾거나 구미와 재협약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운문댐 용수의 울산 공급 문제를 섣불리 꺼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일단 기존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분위기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현 상황에서는 구미 해평취수장에서 대구를 잇는 관로 개설이 극히 불투명한 만큼 관로 개설을 전제로 하는 낙동강 안전한 먹는 물 공급체계 구축 사업 절차를 이행하기에 부담이 큰 탓이다.
이런 가운데 대구는 운문댐 용수 울산 공급과 관련해, 어디에서 물을 가져오든 취수원의 위치만 바뀌는 것일 뿐 추가로 물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 분위기다. 운문댐의 물을 울산과 나누는 문제는 정부의 방침을 따라야 하지만, 추가로 물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쉽게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대구가 향후 구미와의 물 문제를 해결하거나 안동댐 용수 등을 받아오더라도 운문댐 물을 울산과 나누는 것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체 수원 확보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시도 뾰족한 수가 없어 난감한 입장이다.
시는 당장 자체적으로 해법을 찾을 방법이 없는 만큼 일단 추이를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만약 대구가 안동댐 관로 연결을 추진하면서 정부에 국가사업화를 요청하면 운문댐 용수의 울산 공급을 명시하는 방안 정도를 모색하고 있다.
시는 9월 예정인 추경에서 예산이 통과되면 맑은 물 확보 종합계획 수립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시는 운문댐에 의존하지 않고 복류수, 소규모 댐 등 대체 수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는다.
한편 대구와 구미의 협정 해지로 울산의 물 문제뿐만 아니라 반구대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에도 시간상의 차질이 우려된다.
시는 운문댐 용수를 공급받는다는 가정 하에 사연댐 수문 설치 방안을 검토 중인데 운문댐 용수의 공급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김두겸 시장이 세계유산 등재보다 맑은 물 확보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앞세우는 가운데 운문댐 용수의 공급까지 불투명해지면서 문화재청의 심의 과정에서 보존 관련 문제가 화두로 다시 부상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대구의 강경 기조로 코너에 몰린 구미가 협상 테이블을 재개할 경우 오히려 사태 해결이 빨라질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