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운의 울산현대史]홍승순부터 송철호까지 울산발전 진두지휘했던 24명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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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 울산현대史]홍승순부터 송철호까지 울산발전 진두지휘했던 24명의 수장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08.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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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군에서 시로 승격한 이후 울산시를 이끈 시장은 김두겸 현 시장을 포함해 25명이다. 임명제 시장은 초대 홍승순 시장부터 20명이었고, 민선시장은 초대 심완구부터 박맹우, 김기현, 송철호. 김두겸 등 5명이다. 사진은 울산시청사 전경.   경상일보 자료사진
▲ 1962년 군에서 시로 승격한 이후 울산시를 이끈 시장은 김두겸 현 시장을 포함해 25명이다. 임명제 시장은 초대 홍승순 시장부터 20명이었고, 민선시장은 초대 심완구부터 박맹우, 김기현, 송철호. 김두겸 등 5명이다. 사진은 울산시청사 전경. 경상일보 자료사진

김두겸 시장이 지난 7월1일 제8대 민선 시장 취임과 함께 업무를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최고 비즈니스 시장이 돼 울산을 다시 잘 사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울산시는 1962년까지는 울산군이었다가 그해 우리나라 제일의 공업도시로 지정되면서 시로 승격했다. 역대시장을 보면 임명제 시장은 초대 홍승순 시장을 포함해 20명이었고 광역시장은 초대 심완구부터 박맹우·김기현·송철호 등 5명이 취임했다.

시장은 시의 우두머리로, 명장 밑에 약졸이 없듯이 명 시장은 항상 명 시정을 펼쳤다. 공업도시 울산은 풀기 힘든 민원이 많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거세 시장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떠나간 시장들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를 한 페이지 신문에 정리하기에는 공과가 너무나 많다.

울산시의 초대 시장은 홍승순 시장. 울산시장이 되기 전 경남도 상공과장으로 있었던 그가 당시 양찬우 경남도지사의 명을 받아 시장으로 부임한 날이 1962년 6월1일이었다. 임명직 시장으로는 유일하게 1대와 4대 두 번 시장을 지냈던 홍 시장의 가장 큰 업적은 인사였다. 당시 울산시청 공무원이 129명이었는데 그는 이들에 대한 인사를 외부 압력 없이 했다.

역대 임명직 시장 중 가장 시정을 잘 펼쳤던 시장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서는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9대 이재덕 시장과 함께 일했던 공무원들은 이 시장이라고 말한다. 이 시장의 가장 큰 업적은 당시까지만 해도 사유지였던 태화강 둔치를 매입해 차기 시장들이 자유롭게 태화강 종합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 심완구 전 시장은 그의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 옥중생활을 한 뒤에도 ‘심완구의 진실’이라는 부제와 함께 라는 책자를 내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 심완구 전 시장은 그의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 옥중생활을 한 뒤에도 ‘심완구의 진실’이라는 부제와 함께 라는 책자를 내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충남 청양군 출신인 그가 울산시장으로 온 때가 1978년. 그때까지만 해도 울산은 공업단지 조성에만 주력하다 보니 배후 주거 시설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알고 울산시민의 젖줄인 태화강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엄청난 이 사업의 시작에 각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지방 유지들까지도 무리한 사업이라고 반대했고 300여 명이나 되는 지주들이 매일같이 지가 보상 문제로 시청을 찾아와 말썽을 일으켜 이 시장은 외로운 투쟁을 했지만 끈질긴 집념으로 이 일을 해냈다.

역대 울산시장 중 가장 불운했던 시장은 누구였을까. 시장 재임 중 구속된 5대 윤동수 시장이다. 윤 시장이 울산에 온 때는 1970년 12월이었는데 다음해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런데 이 선거과정 중 울산에서 부정선거가 이루어져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장직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이고 구속까지 되었다.

이때 윤 시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던 판사가 유승민 전 국회의원의 부친 유수호 판사였다. 유 판사는 당시 정부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윤 시장에게 실형을 내려 법복을 벗어야 했지만 얼마 후 13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민선시장 시대는 11대와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심완구 시장이 1995년 당선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3대 총선에서는 울산에 국민당 바람이 부는 바람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시장 출마를 했을 때만 해도 많은 울산 시민들이 정치인이었던 그가 시정을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지만 시장이 된 후 큰 행정을 펼쳐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가 남긴 업적은 행정의 독립과 인사의 공정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끌었던 민주자유당 공천으로 당선되었던 그는 당의 입김을 불식시키기가 힘든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정치권의 각종 외압을 물리쳤고 또 공정한 인사를 함으로써 공무원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울산광역시 승격이었다. 광역시 승격은 울산 출신으로 김영삼 정권 아래서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최형우와 울산 정치인들의 역할이 컸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이어오던 김 대통령과 홍인길 총무수석과의 인연도 큰 작용을 했다.

광역시 승격과 함께 그가 남긴 업적은 울산대공원 건립과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였다.

이처럼 울산의 큰 그림을 그렸던 그가 시민들을 놀라게 한 것은 시장 퇴임 직전 뇌물수수 혐의가 언론에 보도되면서다. 이때 필자는 기자 자격으로 심 시장을 찾아가 뇌물을 받은 것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당시 그는 이 질문에 “내가 울산시장으로 있으면서 구정물은 마시지 않았다고만 보도해달라”는 애매한 답변을 남겼다.

이후 그는 오랜 법정 투쟁을 벌였지만 결국 2004년 대법원에서 5년형의 선고를 받아 3년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나마 그가 선고보다 짧은 형을 살았던 것은 노무현 정권 때 고충처리위원장을 지냈던 부산고등학교 후배 송철호 변호사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 시장은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 울산시민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지역일간지에 실었고, 출옥 후에도 ‘심완구의 진실’이라는 부제와 함께 <그래도 그를 용서해야 하나>라는 책자를 발간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김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겼고 출옥 후에는 송 변호사의 총선과 시장 선거를 도왔다. 이에 울산의 야당 인사들은 심 시장이 야당 도시 울산의 정체성을 흐려놓았다는 비난을 했다.

심 시장에 이어 3대 민선 울산광역시장이 되었던 박맹우 시장은 오랜 공직생활 경험을 살려 시정을 잘 폈다는 평가다. 시장이 되기 전부터 울산시청에서 내무국장과 건설국장 등 많은 행정 경험을 쌓았던 그는 시장 출마 직전에는 동구 부구청장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그가 건설국장으로 있을 때 만든 울산 공업탑 로터리 신호체계는 그때까지 만성적인 체증에 시달렸던 공업탑 로터리의 교통체계를 원활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운도 좋아 시장을 세 번이나 한 후에는 바로 국회로 진출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박 시장의 가장 큰 업적은 태화강 개발이다. 울산시민의 젖줄인 태화강은 박 시장이 재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간헐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졌지만 홍수로 범람하는 일이 잦았고 이 때문에 시민들이 입는 피해가 컸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박 시장은 태화강 종합개발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 나중에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시장 재임 시 빛난 업적에 비해 의정활동은 굴곡이 있었다. 재선 의원으로 야당 사무총장을 두 번이나 지냈던 그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를 김기현 의원에게 내어 주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이후 시장 출마로 가닥을 잡았던 그는 올해 있었던 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울산시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공천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겪었다. 통박 시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던 김기현 시장은 전국적으로 민주당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보수가 지켜왔던 울산시장 자리를 단임으로 끝내고 송철호 시장에게 내어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정책위 의장을 지내는 등 능력을 과시했던 그가 단임으로 끝났던 요인으로는 2014년 선거에서 그를 도왔던 선거운동원들이 등을 돌렸고 또 울산시청 공무원 중에도 그를 외면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맹우 시장 시절 특채되었던 송병기는 김 시장 아래서 외곽으로 밀리자 다음 선거에서 송철호 캠프에 합류하는 바람에 김 시장을 힘들게 했다.

2014년 선거에서 김 시장을 도왔던 관계자의 얘기다. “김 시장이 2018년 선거에서 다시 도와 달라고 해 김 시장 선거 캠프에 가 보니 2014년 선거에서 그를 도왔던 선거운동원들 대부분이 송철호 후보 쪽으로 가 선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불행히도 이 예견이 적중하고 말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 낙선했던 김 시장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되어 원내대표를 지낸 후 지금은 여당에서 차기 당권을 노리는 중진이 되어 있다.

국회의원 선거와 시장 선거를 드나들면서 8전9기 끝에 2018년 울산시장 자리를 차지했던 송철호 시장도 단임으로 시장 자리를 내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친해 역대 시장 중 중앙 예산을 가장 많이 가져왔다는 평을 듣는 송 시장이 추진했던 공약사업이 부유식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이었지만 불행히도 이 사업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송 시장의 한 측근은 “부유식해상풍력발전 단지 조성은 에너지 확보가 중요한 현안인 울산으로 보면 고용을 늘리고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는 ‘맞춤형 사업’이었지만 사업 자체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짧은 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업이다 보니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재임기간 중 송 시장을 괴롭힌 사건이 부정선거 의혹이다. 검찰이 기소까지 했던 이 사건은 그가 부시장으로 기용했던 송병기의 일기장을 통해 내용이 밝혀졌기 때문에 송 시장이 너무 주위 사람들만 등용하다 보니 인사에서 실패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에 대해 송 시장 측근은 “지난 시장 선거에서는 영남지역에도 민주당 바람이 불어 여론조사에서 오래 전부터 송 시장이 김 시장을 앞선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송 시장이 부정선거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사건은 나중에 법원 판결을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공과를 보면서 과거 어느 시장보다도 친화력이 있다고 평가를 받는 김두겸 시장이 물러난 뒤 어떤 평가를 받을지가 궁금해진다.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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