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는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지는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지 모른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노력해 온 결과가 바로 무지일 수 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라고 한다면 부인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는 부인할 수 없다. 부지런히 외면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학습 방법을 제안할 때 현실에 매몰되어 수능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현실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에 취해 있었다. 현실을 해결하는 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장 닥친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했다. 함께 챙겨야 하는 ‘현실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외면했다. 그리고 나를 정당화했다. 내가 하는 일이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한편으로는 틀리지 않는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시간을 보냈으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틀렸다. 현재에만 매몰되어 있던 나를 인지하면서도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려 했다. 교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몰라서 무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재의 나에 집중하며 부족함을 인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외면했기에 무지했다. 부끄럽다.
알고 싶은 것에 대해서 적극적이었듯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 왔던 것 같다. 교육청 단위의 수업 개선을 위한 다양한 연수 지원, 교-수-평-기 일체를 위한 수업과 평가 설계 컨설팅, 학습자 중심의 학습 방법으로 권장된 프로젝트 수업, 수없이 많은 동료들의 외침이 더는 외면할 수 없게 했다.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학습 주도권을 부여해야 할까? 학습자의 학습 능력에 대해 교사는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까? 사실은 교사인 나의 불안감이 문제였다. 나는 이제 당장 닥친 현실뿐만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의 미래도 함께 고민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2년 11월17일에 실시되는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원서 접수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수험생은 2022년도 50만9821명 지원에 비해 1791명 감소한 50만803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재학생은 1만471명(2.9%)이 감소한 35만239명(68.9%), 졸업생은 7469명(1.6%)이 증가한 14만2303명(28.0%), 검정고시 등 기타 지원자는 1211명(0.3%) 증가한 1만5488명(3.1%)이라고 한다.
모른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외면한 결과이다. 당연히 당장 닥친 아이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교사의 몫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현실이 되어야 할 미래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야 하는 것 또한 마땅한 교사의 몫이다.
이현국 학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