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청계곡 미천골은 산간 오지다. 깊숙한 원시의 계곡에 휴양림이 들어서면서 접근이 용이해 졌다. 그러자 꽁꽁 숨어 있던 선림원지도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왔다. 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훌쩍 솟은 탑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적막한 골짜기에 자리한 선림원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도하는 승려들의 선 수련원이었다. 그 기세가 창성하던 때,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고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은 쌀뜨물이 계곡을 따라 하류까지 하얗게 흘렀다. 미천(米川)골이 된 이유다. 그러니 미천골의 주인은 선림원지인 셈이다.
가까이 있는 양양의 진전사와 함께 신라 선종을 대표하던 선림원은 10세기를 전후한 어느 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폐사가 되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삼층석탑과 함께 석등, 홍각선사탑비, 석조부도가 남아 있다. 모두 보물이다. 흔적은 있지만 내력은 알 수 없는 폐사지에서 홍각선사라는 고승의 이름을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선다. 희미하여 잡히지 않던 것들의 실체가 보이는 듯하다. 부처의 삶을 살고자 각고의 노력을 했을 선사의 발자국 소리를 품은 삼층석탑과도 마주한다.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이중의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이다. 기단부에 새긴 팔부중상의 수법으로 보아 신라 후기에 조성된 탑이다. 진전사지 삼층석탑의 팔부중상에 비해 미감도 떨어지고 조각도 섬약하다. 하지만 도의의 선사상이 널리 퍼진 그 시절, 선법을 닦기 위해 찾아 온 수도승들을 불러 모았을 석탑은 위풍당당하다. 석탑 앞에 배례석이 놓여 있다. 노란 산국으로 한줌 꽃다발을 만들어 올린다. 빗물 머금은 옆면의 안상무늬와 잘 어울린다.
금당의 주춧돌 위에 서 있으니 계곡의 물소리가 맑고 높게 들린다. 백두대간 구룡령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절터를 휘감는다. 삼층석탑은 그렇게 천년이란 은둔의 시간을 지나 우리 앞에 모습을 나투었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