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단길은 중국의 시안(西安)으로부터 둔황(敦煌)을 거쳐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풍요의 땅이라는 투루판(吐魯番), 이스탄불, 로마에까지 이르는 총 길이 6400㎞에 달하는 무역로이다.
이 실크로드는, 비단(緋緞)은 물론 도자기와 향신료, 보석 등의 교역품과 고대 동서양의 찬란한 문명이 오가던 교통로로, 중국 한 무제(漢武帝)가 기원전 2세기경에 장건을 시켜 개척한 이래 당나라 때 가장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이 길의 명칭이 된 ‘비단’은 누에가 만든 고치로부터 추출한 명주실을 원료로 하여 짠 피륙을 일컫는다.
어린 시절 추석이 오면 필자는 유학(?)하던 도시에서 귀향해 어머니와 고모들이 빚은 송편을 먹고 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것 외에 누에에 대한 추억이 있다.
30~4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고향 예천에는 누에를 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야산 아래로는 뽕밭이 많았고 읍내에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제사공장(製絲工場)도 있었을 만큼 양잠업이 성행했다. 추석 근처에는 가을누에가 마지막 잠을 잔 후 고치를 만들기 시작하든지, 완성된 고치를 수거해 겉에 붙은 불필요한 실낱들을 손기계로 떼는 작업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누에는 뽕을 먹으며 한 달을 산다. 알로부터 갓 부화한 어린 누에는 잘게 썬 뽕잎을 먹지만, 체중이 거의 1만배가 넘는 성충이 되면 선친께서는 바지게에 뽕나무를 가지째로 지고 와 잠박(蠶箔) 위에 통째로 올려주셨다.
누에는 부지런히 뽕잎을 먹고 몸집을 키운 뒤 실샘으로부터 비단결 머금은 실을 내뿜어 고치를 만든다. 나방이 배란한 알로부터 부화한 후 한 달 동안 완전변태를 통해 성인의 손가락 크기만 한 성충이 되면 입으로 주옥같은 언어를 토해내는데, 그가 만든 고치 하나에서 나오는 실의 길이는 무려 1000m~1500m나 된다. 실을 추출하고 나면 고치 속 번데기는 고급 단백질을 제공하고, 끝까지 남은 것은 나방이 된다. 특히 누에나방의 눈썹을 ‘아미(蛾眉)’라 하니 그의 생애가 아름다움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또 5령(五齡)이 지난 누에를 동결 건조한 분말은 혈당조절에 특효가 있다고 하는데, 이 신묘한 성분을 함유한 뽕나무는 봄·가을 일 년에 두 번 잎이 나는 특이한 식물로 때로는 상황버섯을 피워내고, 오디를 맺으며 춘잠(春蠶)과 추잠(秋蠶)을 가능하게 한다.
오늘, 누에의 입으로부터 발현되는 주옥같은 언어를 생각한다.
입만 벌리면 온갖 비난이 난무하고 대책 없는 타박과 험담으로 날을 지새우는 인간들을 보며 누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오직 세상 최고의 덕담과 찬사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누에의 마음을 우리는 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불현듯 명심보감에 나오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나를 꾸짖고,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라는 잠언(箴言)이 생각난다.
농촌의 고소득 업종이었던 잠업이 사양길을 걷고 뽕나무가 무성하던 땅이 이제 샤인 머스켓 같은 포도밭으로 바뀌었으니 불과 수십 년 만에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우리 주위에는 누에가 제공한 견직물(絹織物) 대신 화학 섬유인 인견(人絹, rayon)이 점점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깊은 밤 어쩌다 잠을 깨어, 굵은 설탕을 흩뿌려놓은 듯한 별을 보려고 마당에 나갔을 때 무심코 잠실(蠶室)의 문을 열면 누에가 왕성하게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가 부슬비 내리듯이 평화롭게 들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