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사(生死)의 길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현대어로 풀이한 신라 향가 제망매가다. 누이 잃은 슬픔을 어찌 이리도 절절히 표현할 수 있을까.
지난 10월29일 밤 서울 이태원역 부근 길이 40m 폭 3.2m의 작은 골목길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 수천명이 몰리면서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변했다. 꼼짝없이 끼인 상태에서 밀리다가 도미노처럼 넘어져 156명이 질식사했다. 너무 어이없고 안타깝다. 대부분 꽃다운 젊은이들이다. 부모의 죽음이 천붕이라지만 자식의 죽음에 대한 슬픔인 참척지통(慘慽之痛)은 차원이 다르다. 경험상 그렇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딸들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이태원 사고 후 어느 신문에 도쿄대 교수를 지낸 강상중씨가 쓴, 이태원 비극에서 사망한 젊은이들 부모의 슬픔에 대해 위로하는 내용의 칼럼을 읽었다. 자신도 아들을 잃었는데 목숨을 바꾸더라도 지키고 싶었던 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부모님은 오래 오래 건강하게’라는 메시지를 남겨 자신과 아내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썼다.
비슷한 슬픔을 나도 가슴에 안고 살고 있다. 인생의 사계절은커녕 봄도 제대로 다 보내지 못한 초등생 딸을 20여년 전에 잃었다. 서울 한복판의 건물 2층 가게 매장의 가장자리에서 옷 진열대로 가려진 채 난간이 없어 어이없게 아래로 떨어졌다. 시설물의 관리상 중대한 과실로 법적 책임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고객인 시민의 안전을 소홀히 하는 안전불감증의 한 단면이 아니던가. 당시에는 안전이 더 어수룩했다. 흰눈이 내리는 겨울 어느 날 한줌으로 변한 재를 뿌리면서 통곡했고 함께 지낸 추억을 가슴속에 아로새겼다. 식구들의 외출에서 일어난 일이고 나는 그 현장에 없었지만 ‘내가 지켜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왜 나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생각에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내가 죄많은 인간이라 그랬다’는 죄책감도 들었다. 그 이후 난간없는 높은 곳에 설 때면 숨이 막혔다. 이태원 참사의 부모들도 참척의 슬픔을 겪으면서 치유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싫지만 지극히 사적인 가슴아픈 일을 소환하는 이유는 그러지 않고는 사고를 정치화하는 행태를 비판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작태는 괴이쩍고 그 무리들은 괴랄하다. 이태원 참사는 정부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하고 원인과 책임 등 진상 규명, 방지 대책과 안전 시스템 등을 만들어 나가야 할 일이다. 초기에 행안부장관이 ‘경찰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실언으로 공분을 샀다. 마땅히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기에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냉정히 사태를 논의해야 할 국정 현장에서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관등 성명 대라’고 호통치는 사람은 또 뭔가.
죽음은 개인에게 우주적 문제다.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자식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치유는 오롯이 부모 몫이다. 도와야 하겠지만 그 명분으로 어떤 사고의 현장에서 ‘얘들아 고맙다’는 글을 적거나 이번 참사에 ‘제대로 추모하기 위해 사망자 이름을 공개하라’고 떼쓰는 등의 황당한 행동은 삼갔으면 한다. 언젠가 모두 세상 떠나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간다. 자식 먼저 보낸 부모 마음은 무망하지만 언젠가 자신도 가게 될 곳에서 다시 볼 수 있을 날을 기다리지 않을까. 수백번 되뇌었던 무명씨의 시를 기억해 본다. ‘바람이 멈추었다. 봄은 향그러운 뼛가루만 남긴 채 떠나 버렸다. 우리들이 쓰던 세간살이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 없고 나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밤은 깊어만 가는데 머리 빗을 기운조차 없이 너무나 피곤하구나. 당신이 떠나가신 두강(江)은 아직도 아름다운 봄이라는데 나도 그곳으로 배를 저어가고 싶지만 내 작은 조각배로는 그곳에 도착할 수 있기나 할지’.
박기준 변호사·전 부산지검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