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운의 울산현대史]UNIST 설립추진 등 울산성장 위해 다양한 의정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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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 울산현대史]UNIST 설립추진 등 울산성장 위해 다양한 의정활동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12.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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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전 의원의 특강을 듣고 있는 상북면민들.

강길부 전 국회의원이 지난 주 고향 울산 울주군 상북면에서 지역민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다. 제목은 ‘상북의 과거와 미래 비전’으로 이 행사는 ‘영남알프스 숲길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주최했다.

김민출 조합장은 “상북면과 관련된 각종 얘기는 많지만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돼 우리 고장이 낳은 정치인으로 울산문화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의정활동을 활발히 펼쳤던 강길부 의원을 초빙해 강연을 듣게 되었다”면서 “앞으로 이런 행사를 자주 해 강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거 예로 보면 울산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은 많지만 의원직에서 물러난 후 강 전 의원처럼 고향에서 특강을 한 사례는 많지 않다.

특별히 상북면 청년회가 이번 행사를 알리기 위해 현수막을 붙였는데 현수막에는 강 전 의원을 ‘향토사 작가’로 소개해 면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 강의 전 울산 울주군 상북면사무실에서 면민들과 대화하고 있는 강길부 전 국회의원
▲ 강의 전 울산 울주군 상북면사무실에서 면민들과 대화하고 있는 강길부 전 국회의원

“현수막에 저를 전 국회의원이 아니고 ‘향토사 작가’로 소개해 놓은 것을 보는 순간 저 스스로 상북면 출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뻤습니다.” 강 전 의원의 얘기다.

강 전 의원은 정치인이 되기 전 건설교통부에서 일하는 동안 울산지명과 관련된 책을 여러 권 발간했다. 1980년대 이후 울산 향토사학자들이 지명 관련 논의를 활발히 하고 이를 책자로 발간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강 전 의원의 이런 노력이 큰 힘이 되었다.

그는 20대 국회가 막을 내릴때 쯤 자신이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서울에 가지 않고 부인과 함께 고향 땅 울산에서 살면서 노후를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기억하는 울산사람 중에는 그가 지금도 울산에 살고 있는지 울산에 산다면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의 약속은 부인이 갑자기 타계하는 바람에 지켜지지 못했다. 강 전 의원은 부인이 타계한 후에도 한동안 울산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 아파트에서 6~7개월 혼자 살았다. 그는 구영리에서 사는 동안 자신이 일생동안 모았던 3000여 권의 서적을 선바위 도서관에 기증한 후 서울로 갔다.

그는 현재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혼자 살고 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혼자 살아 보니 매일 음식을 해 먹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개포동에서는 우선 식사 문제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살기가 편리합니다.”

그에 따르면 개포동 인근에는 회사가 많은데 이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외지인들도 일정한 식비만 내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이런 식당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한다.

강의는 상북면 출신의 인물과 지명 그리고 정치 관련 얘기도 잠시 했다. 매사에 준비성이 많은 그는 이번 강의를 위해 <나의 그리운 고향, 상북면 이야기>라는 자그마한 책자도 만들었다.

책 속에는 상북면 관련 인물, 지명, 언양 3·1운동 내용이 실려 있고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추진했던 UNIST(울산과학기술원) 설립 과정 등 지역현안도 실려 있다.

그는 이번 강의를 위해 울주군이 2001년 발간한 12개 읍·면지는 물론이고 울주문화원이 2013년 내어놓은 <울주천년 인물을 만나다>와 울산시가 2014년 만든 <울산 인물>을 참고로 했는데 이들 책이 강의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강의를 준비하는 동안 고향 관련 공부를 많이 했다는 그는 특히 고무신(古無新)이라는 호를 쓴 박종우 시인이 울주군 상북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라고 기뻤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학자인 석남 송석하 선생이 근거 없이 친일파로 몰려 그의 높은 학문적 업적이 폄하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고 밝혔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박종우 시인이 상북면 출신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알고 보니 박 시인은 상북 지내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일본 유학을 갔다가 해방 후 귀국해 경주에서 교사로 활동했는데 이런 그의 행적이 울산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오히려 경주에서 그의 문학 활동이 더 활발했고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고향 후배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또 “박 시인이 울산에서 이처럼 문학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경주 사람으로 알려진 이면에는 그의 기행(奇行)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술가의 기행은 천시를 받기보다는 예술 창조를 위한 에너지로 보아주는 지역민들의 사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시인은 상북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일본 니혼대학 문과를 거쳐 해방 후 돌아와 안동고와 포항고에서 국어교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경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당시 유치환 경주 고등학교 교장과 함께 문학 활동을 하다가 52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현재 그를 기리는 시비가 경주 김유신 장군 묘가 있는 송화산 자락에 있다. 이 비의 받침돌에는 그의 시 ‘종(鐘)’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석남 송석하에 대해서도 그의 업적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그를 친일파로 폄하해 버리는 것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 자산을 스스로 버리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석남 선생은 일제강점기 민속 연구와 발굴을 위해 전국을 누볐고 이런 노력으로 민속연회, 세시풍속, 민간신앙, 무속과 유적지 관련 많은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들 사진이 오늘날 우리 민속 문화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에 의해 그가 친일파로 몰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서부와 남부로 지역 여론이 확연히 갈라져 있는 울주군의 경우 이런 면 단위 행사를 자주 열어 갈라진 민심을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 중 하나가 울주군민이 철저히 서부와 남부로 갈라져 장벽을 쳐놓고 생활을 하다 보니 지역 사업을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상북면 행사를 해보니 지역 인물과 지명이 직접 언급되어 지역민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런 행사를 자주 가지면 지역민들 사이에 놓여 있는 담장을 허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정 활동을 하는 동안 ‘문화 국회의원’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던 그는 언양읍성 정비와 석남사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는 등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석남사에 머무는 동안 석남사 증개축을 위해 힘썼던 성철 스님의 딸 불필 스님은 자신이 석남사에 있는 동안 강 전 의원이 석남사 중건에 큰 도움을 주었다면서 강 의원 칭찬을 요즘도 자주 하고 있다.

현재 해인사 금강굴에 주석하고 있는 불필 스님은 특히 그가 석남사 요사채를 증축할 때 강 전 의원이 직접 자신과 함께 대전에 있던 문화진흥원을 찾아가 요사채 증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예산 확보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제가 석남사 요사채를 고치려는데 돈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강 의원에게 얘기했더니 그가 나와 함께 대전에 있던 유홍준 문예진흥원장을 찾아가 예산을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문예진흥원 사람들이 ‘사찰 건물도 아닌 요사채를 고치는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냐’면서 예산을 깎으려 해 제가 ‘스님들에게는 공양을 위해 매일 활동 해야 하는 요사채가 일반 사찰 건물 못잖게 귀중하다’고 고함을 질렀더니 문예진흥원 직원들이 아무런 대답을 못 하고 예산을 주어 요사채를 잘 고칠 수 있었다”고 불필 스님은 말했다.

강의 내용 중에는 UNIST 설립 과정도 들어 있다. UNIST는 2004년 그가 17대 총선에 당선된 후 일을 시작해 2015년에야 개학했다. 그가 총선에 출마했을 때는 노무현 정권의 열린우리당 때라 울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힘든 정치 환경에도 불구하고 고원준·이두철·송철호 등이 울산 발전을 위해서는 울산에도 여당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1명 당선되어야 한다면서 강 의원을 열린우리당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켰다. 이때 노 대통령이 송철호를 통해 울산시민에게 한 약속이 울산국립대학 설립이었다.

이런 노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강 의원은 국회 입성 후 국립대학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는 지방의 대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지방에 대학을 신설하는 자체가 힘들었다. 이 문제는 강 전 의원이 2005년 9월 노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직접 만난 후 정부가 건축비 전액을 부담하라는 노 대통령 지시로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17대부터 20대까지 연속 4선을 해 역대 울주군 국회의원 중 최다선을 기록했지만 정치에 관한 한 그는 할 말이 많다. 그가 얼마나 정치 환경이 어려운 속에서 의정활동을 했나 하는 것은 그가 18대와 20대 두 번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정치인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철새 정치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라고 회상한다.

▲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제가 울주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펴는 동안 지역민들은 물론이고 울산의 국회의원들도 한나라당에 입당하라는 요청을 많이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소속 당을 바꾸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지만 지역민들이 이처럼 원하는 일이라 한나라당에 입당했더니 그날로 부터 울산 출신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지역민 중에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저를 ‘철새 정치인’이라면서 비난하는 데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우리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이 먼저 바뀌어야 하지만 이에 못잖게 선진화된 국민의 정치의식도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이를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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