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산업과 문화의 격차가 심각한 도시다. 1962년 특별공업지구 지정이라는, 그야말로 특별한 국가 시책에 따라 산업에 치중하는 바람에 다른 분야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못한채 급성장했다. 산업 중심의 획일적 성장에서 벗어나 그나마 문화로 눈을 돌린 시기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고 월드컵 개최를 앞둔 2000년대부터다. 삶의 질과 정주여건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문화예술이 도시의 중요한 매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심완구 시장은 1995년 문을 연 울산시문예회관을 새단장하고 시립예술단에 전국 최고의 예술감독을 영입하는 등 문화예술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북구를 시작으로 구·군 문예회관도 속속 문을 열면서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어느덧 문화 분야 전문행정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됐다.
그럼에도 울산시는 전문문화행정에 늑장을 부렸다. 2011년 11월 남구고래문화재단이 설립됐지만 고래축제 등 고래관련사업에만 몰두했다. 2017년에야 울산시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문화예술행정의 전문가시대를 열었다. 2020년 11월에는 울주군문화재단도 출범했다. 유야무야되긴 했으나 2018년 중구에서도 문화재단 설립이 추진됐다.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전시분야에서도 2021년에 시립미술관이 개관하면서 2011년 개관한 시립박물관과 함께, 시설면에서 전시-공연 양대축이 형성됐다. 광역도시의 필수 문화시설들이 광역시 승격 25여년만에 비로소 갖춰진 것이다. 전문문화행정은 더욱 절실해지나 문화행정의 전문성은 되레 뒷걸음질이다. △출범 초기의 순수성이 점점 사라지고 △운영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데다 △문화예술시설은 낡고 있으나 신축은 물론이고 증개축 예산 확보에도 미온적이다.
게다가 정권이 보수진보보수를 오가면서 문화시설과 재단이 정치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문예회관 관장과 문화재단 대표가 비전문가로 채워지는 경우가 속속 발생하고 있다. 퇴직 공무원의 자리로, 선거공신을 위한 자리로 바뀌면서 문화행정의 특수성·전문성 없이 행사와 예산관리에만 급급하는 양상도 보인다. 문화예술의 전문가시대가 열리나 했더니 수년만에 급격한 퇴보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문화행정은 일반 공무원들이 수행하기 버거운 전문성을 요구한다. 준비되지 않은 아무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공무원이나 비전문가에 의한 반짝 아이디어나 모방 수준으로는 전문가는커녕 일반시민들의 눈높이도 맞출 수 없다.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문화예술기관 수장의 마인드가 결국 그 지역 문화의 수준이 된다. 문화예술기관의 체급을 더 올려서, 진정한 전문가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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