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92)]거름이 피워올리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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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92)]거름이 피워올리는 꽃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3.02.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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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매화가 피고 산수유의 봉오리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이 맘 때가 되면 시골 마을에는 꽃 향기 대신 거름 냄새가 코를 찌른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불쾌한 냄새이지만 농부들에게 거름 냄새는 향긋하기만 하다. 거름 냄새가 많이 나는 마을일수록 부지런한 농부가 많다.

늘그막의 아버지/ 벗어놓은 양말이며 옷가지에서/ 거름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앙상한 등짝으로 부려놓은 풀 더미에 가축 오줌과 똥을 잘 섞는다 각자의 냄새를 지켜내겠다고 서슬 퍼렇게 날뛰던 것들이 오래 지켜온 습성을 버리기 시작한다 저마다의 냄새로 진동하던 것들이 고집을 버려 삭아지고 토해내며 거름으로 될 때의 냄새가 난다 검은 흙빛 미지근한 열감으로 모든 냄새들이 포기하여 뭉쳐진 거름…(후략) ‘거름’ 일부(이정희, 2020 경상일보 신춘문예)
 

거름은 종류도 많다. 풋거름은 생풀이나 생잎으로 만든 충분히 썩지 않은 거름을 말하고, 밑거름은 씨를 뿌리거나 모종하기 전에 주는 거름을 이른다. 웃거름은 씨앗을 뿌린 뒤나 모종을 옮겨 심은 뒤에 주는 거름을, 뒷거름은 농작물에 첫 번째 거름을 준 뒤 밑거름을 보충하기 위해 주는 거름을 말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밑거름이다.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밑거름을 풍부하게 넣어주는 것이다. 밑거름이 풍부하면 어떤 일이든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밑거름은 봄의 화려한 꽃으로, 가을의 풍성한 과일로 나타난다.

“돈을 쌓아두면 똥이 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 평생 한약방을 하면서 번 돈으로 ‘아름다운 기부’를 해온 김장하 선생이 한 말이다. 지난해 말 모 방송에 나온 그는 19세에 한약사 시험을 통과한 뒤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지역의 인권, 문화, 역사를 위해 헌신해온 진주의 큰어른이다.

미국 뉴욕주가 최근 사람의 시신을 거름으로 만드는 장례 절차를 합법화했다고 한다. 이런 장례는 통상적 매장이나 화장과 달리 인간의 시신을 퇴비화하는 것으로, 시신을 나무조각, 짚, 풀 등과 함께 밀폐관에 넣어 미생물이 주검을 분해하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한 달 남짓 분해가 끝난 시신은 꽃밭이나 나무 등에 거름으로 뿌려진다. 이런 장례는 2019년 워싱턴주가 처음 도입했고, 이후 콜로라도, 오리건,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욕이 동참했다.

들판에 거름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아는가, 거름냄새가 곧 꽃향기라는 것을.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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