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가는 오르는데 정유사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은 하락세를 보이면서 지난해 역대급 호황을 누렸던 국내 정유사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정유사들의 1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감소할 뿐만 아니라 2분기 실적은 더욱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2.5달러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제마진이 2달러 대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 10월27일(2.46달러)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지난해 정제마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여파로 6월 넷째주 평균 29.5달러까지 치솟았으나 하반기 들어 갑자기 급락하면서 9월 셋째주 평균 0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는 1월 넷째주 13.5달러까지 회복했으며, 이후 7달러 대를 유지하다 이번달 들어 흐름이 꺾이고 있다.
정제마진이란 최종 석유제품의 가격에서 원유를 포함한 원료비를 뺀 것으로,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이를 휘발유, 경유 등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정제마진은 보통 4~5달러를 이익의 마지노선으로 보는데 4~5달러 이상이면 수익, 그 이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현재처럼 2달러대 정제마진에서는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것이다.
여기다 정제마진은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국제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감산 발표로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업계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유가가 오르면 정제마진도 오르는 게 보통인데 이례적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정제마진 약세는 세계적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감소 때문으로 보인다. 정제마진이 오르려면 수요가 살아야 하는데 공급만 줄었을 뿐 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 불경기 속 감산과 유가 상승은 좋지 않은 소식”이라며 “원유 도입 비용은 비용대로 쓰고 정작 벌어들이는 건 없으니 정유사나 화학사 모두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유가가 오르면 석유제품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는데 경기 침체 상황에서 유가 상승은 수요를 더 위축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경기침체 장기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제마진 약세 흐름이 얼마나 이어질지 예상이 쉽지 않다.
다만 미국에서 전략비축유를 보충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여름 휴가철인 ‘드라이빙 시즌’이 도래한다는 것은 석유 수요 회복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권지혜기자 ji1498@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