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정호승 ‘낙법(落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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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정호승 ‘낙법(落法)’
  • 경상일보
  • 승인 2023.05.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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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배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낙법이었다
당신이 당신의 생애 전체를 기울여
나를 메치고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어두운 골목길에 쓰러뜨리고
벼랑 아래로 힘껏 떠밀어버린 것도
결국은 나에게 낙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넘어지면 넘어지면 되고
쓰러지면 쓰러지면 된다는 것을
새가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기차를 타면 기차에 나를 맡기는 것처럼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
쓰러지면 쓰러진 곳에 나를 맡기면 된다는 것을
진실로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넘어져도 제대로 넘어지는 법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데에
내 존재를 다하여
나는 가난한 당신의 사랑이 필요했다



시련속에서 나를 일으키는 ‘실패’ 라는 기술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낙법은 넘어지거나 떨어질 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기술이다. 대개 몸을 둥글게 말고 관성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니까 넘어지면 넘어지고, 쓰러지면 쓰러지면 된다. 이렇게 ‘나를 맡기면’ 안전하게 넘어질 수 있다. 둥글게와 맡기면은 ‘잘’ 떨어지는 자세이다.

그런데 넘어지는 일은 실패, 좌절, 절망의 상황도 함의한다. 우리는 대개 성공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실패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실패는 입에 담으면 안되는 금기어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하는 법이 아닐까. 제대로 실패하는 법을 알아야 제대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당신’이 나를 끊임없이 넘어뜨리고 쓰러지게 한 것도 실패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제대로 일어서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 많은 시련을 준 것이다.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제 인생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낙법을 배워야 할 때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건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시이기도 하다. 흐름에 자신을 맡겨라. 떨어질 낙(落)자에 물 수(氵) 자가 들어가는 까닭.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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