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박물관. 울산에도 설립을]해방이후 첫 교과서 출판, 울산사람이 주도했다
상태바
[교과서 박물관. 울산에도 설립을]해방이후 첫 교과서 출판, 울산사람이 주도했다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3.05.15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교과서 박물관에 전시된 2차 교육 과정 교재.
▲ 교과서 박물관에 전시된 2차 교육 과정 교재.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며 시급한 문제 중 하나가 우리말 교과서 편찬이었다. 하지만, 당시 남아있던 일본어 교재를 없애고 우리말 교재를 펴내기엔 교과서 출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열악한 인쇄 시장에 정부 예산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출판 이윤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입국(敎育立國)·실업교육(實業敎育)·출판보국(出版報國)을 창립이념으로 대한교과서 주식회사(현 미래엔)를 세우고 교과서 출판 사업에 뛰어든 사람이 나왔다. 바로 울산 울주군 언양 출신 우석(愚石) 김기오(1900~1955·사진) 선생이다. 선생의 업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 출판 이외에도 교육과 문화사업의 선구적인 역할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업적인 교과서와 관련된 박물관 건립 등으로 선생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울산출신 인사들 교과서 출간 등 제의

우석 김기오 선생은 1900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배움을 깨우쳤다. 젊은 시절에는 언양 청년회와 울산 기자단, 신간회를 통해 일제에 저항하면서 애국심을 불태웠다. 그 결과 자신은 장애를 얻었지만, 불굴의 정신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출판 사업으로 자수성가했다.

1926년 양산시에서 시작한 인쇄업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쇄·출판인이 되기까지 그의 역경은 시대적 격랑과 함께했다. 정부는 해방 후인 1948년 학생 교육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이때 우석 선생과 인연이 있던 울산 출신 외솔 최현배 선생이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근무하며 업무를 주도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이 일을 해낼 시설과 자금을 갖춘 출판사는 없었다.

▲ 1954년 발행된 '고등표준상업경제'
▲ 1954년 발행된 '고등표준상업경제'

외솔 선생은 고심 끝에 우석 선생에게 교과서 출판을 부탁한다. 우석 선생은 교육과 국가 발전에 교과서가 필수적이며 생산 공급이 시급하다고 결정하고 동향 출신인 석운 오위영 조선신탁은행 은행장에게 3000만원을 빌려 대한교과서 주식회사를 세우고 자신의 평생 사업이 될 교과서를 편찬한다.

우석 선생은 대한교과서 주식회사가 창립된 지 6년8개월이 지난 1955년 1월1일에는 월간 <현대문학>도 창간했다. <현대문학>이 나오기 전 우리 문단에는 문예 전문지가 한 권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석 선생은 1954년 10월1일에 ‘현대문학사’를 설립해 이듬해 월간 <현대문학>을 펴내며 문학인에게 발표의 장을 제공하며 한국문학 발전과 위상에 크게 공헌하게 됐다. 2023년 5월 통권 821호가 나온 월간 <현대문학>은 우리나라 최장수 문학잡지로 김동인, 한강, 정보라, 문이소, 이하진 등 이 잡지를 통해 나온 문인과 작품을 발표한 문인들은 대한민국 현대문학사의 한 축을 장식한 작가들이다.

월간 <현대문학> 창간을 결심한 것은 동향 출신 난계 오영수를 6·25 전쟁 중 부산에서 만나고 나서다. 우석 선생은 이윤을 초월해 한국문학을 위해 순수 문예지를 창간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간 후 당시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던 문예지가 종간됐다는 소식에 ‘독립 국가에 문예 전문지가 없다는 것은 수치이자 문화적 두뇌 마비’라고 개탄하며 창간을 서둘렀다고 한다.

문영 시인은 “세종시에 교과서 박물관이 있지만, 울산만의 특색 있는 ‘교과서 박물관’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며 “우석 선생의 대한교과서 주식회사·현대문학사 설립은 모두 동향 출신인 외솔, 석운, 난계 선생과 연관이 있기에 이들의 자료 등도 함께 전시하면 더욱 알찬 전시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 최장수 문학잡지인 월간 '현대문학' 창간호
▲ 우리나라 최장수 문학잡지인 월간 '현대문학' 창간호

◇수익 일정 부분 사회 환원

우리나라 교육 역사에서 대한교과서 주식회사(현 미래엔)가 발행한 책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한교과서에서 발간한 교과서가 정부 차원에서 보관되지 않고 있다. 이를 감안해 국가가 못했던 일을 대한교과서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03년 9월 세종시에 박물관을 건립했다.

교과서 박물관에는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교육입국의 숭고한 이념을 가지고 그동안 출판업자 모두가 외면했던 교과서 생산과 공급을 위해 힘써온 대한교과서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또 해마다 생산된 교과서와 교육 관련 자료가 축적돼 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나라 교육과 교과서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교과서 박물관에서는 이들을 위해 그동안 교과서가 어떻게 변했는지 연구자에게 자료를 제공한다.

▲ 교과서 박물관에 전시된 '새소년' 창간호
▲ 교과서 박물관에 전시된 '새소년' 창간호

물론 박물관 건립에는 준비 과정부터 어려움도 많았다. 1960년부터 건립을 추진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게다가 건립에 드는 자금 확보가 쉽지 않았다. 박물관 건립은 상당한 돈이 필요한 데 반해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다.

주식회사의 특성상 경영진 상당수가 공익사업도 좋지만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수익이 전혀 없는 박물관 건립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회사 창립의 기본 이념이라는 것을 꾸준히 설득한 끝에 건립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주시경 선생의 친필 이력서는 물론 우리나라 교과서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소개된 공간도 있다. 또 프랑스, 독일, 중국 등 세계 각국의 교과서도 전시돼 있다. 우석 김기오 선생의 흔적을 찾아 볼수 있다. 대한교과서 창립 기념문과 함께 당시 주식모집 공고도 소개돼 있다.

문 시인은 “출판업계에서 선구자적인 위치에 서 있는 우석 선생의 업적을 볼 수 있는 기념관, 나아가 교과서 박물관이 울산 울주군에 건립된다면 좋겠다는 의사를 후손에게 전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며 “교과서 박물관 역시 자료 대여·전시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