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처럼 퍼지는 도심속 빈집]시간 멈춘 빈집들 슬럼화, 남은 주민 고립된채 고통
상태바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도심속 빈집]시간 멈춘 빈집들 슬럼화, 남은 주민 고립된채 고통
  • 석현주 기자
  • 승인 2023.05.19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울산 중구 옥교동 새치 일원의 한 주택가 빈집에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도시를 병들게 하는 빈집이 울산 도심까지 파고 들었다. 과거에는 농촌지역의 빈집이 사회적 문제로 자주 거론됐지만, 최근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가속화되면서 도심 빈집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020년 울산시와 5개 구·군이 빈집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울산에는 총 1794곳의 빈집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울주군이 768곳으로 가장 많았고, 중구 345곳, 남구 308곳, 북구 198곳, 동구 175곳 등의 순이다. 이중 노후·불량 정도가 심각한 4등급(철거대상)은 262곳이다.

전국적으로 주택 부족으로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고 아우성이지만 한편에서는 빈집이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치된 빈집들이 모여 형성된 ‘빈집촌’은 이웃들의 삶마저 피폐하게 만든다. 본보는 빈집이 발생한 원인과 분포 패턴을 분석, 향후 빈집 활용방안에 대해 2회에 걸쳐 모색해 본다.

▲ 현금청산자들과의 보상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남구의 한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구역내 골목길.
▲ 현금청산자들과의 보상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남구의 한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구역내 골목길.

◇15년 넘게 지지부진한 재개발사업

대단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울산 중구 옥교동 새치 일원의 한 주택가. 15년이 넘는 기간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동네 곳곳에서 빈집이 늘고 있다.

조합이 소유권을 완전히 확보한 집에 한해서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업주체가 여러번 변경되다보니 조합·지주간 민형사 소송도 많은 상황이다. 이처럼 빈집이 증가하는 요인은 주택의 노후화와 주거인구의 고령화뿐만 아니라 정비사업 지연 또는 구역 해제와 같은 정책적 요인과도 맞물려 있다.

더 큰 문제는 개발 구역 외 사각지대에 놓인 빈집이다.

해당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건립 현장에서 불과 한 블록 옆에서도 장기간 방치된 빈집들을 발견할 수 있다. 대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지만, 옆집 담장으로 올라가 어렵게나마 확인한 내부는 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낡은 모습이다. 폭풍이 한바탕 쓸고 간 듯 마당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무산되는 과정을 10여년간 반복해 오면서 어느새 골목 곳곳에는 철학관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가속화되면서 도심 빈집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울산 중구지역 구도심 주택가 전경.  김경우기자
▲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가속화되면서 도심 빈집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울산 중구지역 구도심 주택가 전경. 김경우기자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어떤 골목은 한 집 걸러 한 집이 철학관, 점집일 정도로 많아졌다. 그만큼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빈집들이 늘어가면서 동네 자체가 슬럼화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면서 “이 동네는 대부분이 매월 들어오는 월세 수익을 바라보고 거주하는 고령자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울산시 남구에 위치한 또 다른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구역. 건물 곳곳이 수십 개의 현수막으로 도배됐다. 조합과 현금청산자가 수년간 현수막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동네는 2009년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으로 지정됐지만 10년 넘게 지지부진했다. 빈집들이 많아진 시점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후인 2020년 6월부터다. 2021년 말 건축물 해체 신고 후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현금청산자들과의 보상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면서 빈집촌으로 시간이 멈춰 버렸다.

정비사업구역에서는 제외됐지만, 골목 하나를 두고 빈집촌을 마주해야 하는 인근 아파트 주민 최씨는 “3년 가까이 사업추진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폐가에 가까운 빈집들이 늘면서 미관상 문제부터 악취, 해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얼마나 더 오래 이 빈집들을 마주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대단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울산 중구 새치 일원의 한 빈집에는 폭풍이 한바탕 쓸고 간 듯 마당에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 대단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울산 중구 새치 일원의 한 빈집에는 폭풍이 한바탕 쓸고 간 듯 마당에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기와집에 멈춰버린 도시

빈집은 또 다른 빈집을 낳는다. 마을에 빈집 하나가 생기면 옆집도 빈집으로 변하는건 시간 문제다. 무엇보다 남겨진 주민들은 그 빈집 사이에서 고립된 채 고통받고 있다.

울산 북구 호계동. 이 일대 빈집들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적지 않았다. 대형 건설사들이 몇 차례 재개발 의지를 보였으나 보상금액이 문제였다. 집주인들과 협상에 매번 난항을 겪으면서 무산되기 일쑤였다.

골목길에서 만난 정모씨는 30년 넘게 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 정씨가 사는 집의 앞집은 20년 이상 방치된 빈 집이다. 대문을 뚫고 나온 잡초들이 방치된 세월을 묘사해줬다. 2000년대 초까지 사람이 살았지만, 집주인이 세상을 떠났고 자녀들마저 외면하면서 아무도 찾지 않는 폐가가 됐다. 빈집과의 오랜시간 동거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씨는 “사람이 사는 집과 살지 않는 집은 무너지는 속도가 다르다. 이젠 예전 집 형태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면서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는데,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폐가를 매일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집과 함께 살고 있는 주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비슷했다. 쓰레기 투기, 벌레 및 해충, 범죄, 붕괴 우려 등이다. 실제로 장기간 방치된 빈집은 무단 쓰레기 방치, 유해 동식물 서식으로 주변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울산시는 관련 법에 근거해 매년 빈집 정비사업을 실시하지만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정비사업에 투입된 전체예산은 약 9억원 수준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울산에 정비사업을 통해 마을쉼터, 주차장 등으로 탈바꿈 한 빈집은 지난해 기준 30곳에 불과하다.

시 관계자는 “안전이 우려되는 빈집은 소유주에게 빈집 정비사업 협조요청을 하고 있지만,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다. 사업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고 예산편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석현주기자 hyunju021@ksilbo.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기고]영남알프스 케이블카의 조속한 설치를 촉구하며
  • [발언대]위대한 울산, 신성장동력의 열쇠를 쥔 북구
  •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복효근 ‘목련 후기(後記)’
  • 울산 남구 거리음악회 오는 29일부터 시작
  • 울산시-공단 도로개설 공방에 등 터지는 기업
  • 울산 북구 약수지구에 미니 신도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