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승격 결정적 역할 ‘마지막 생존자’ 온산 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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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승격 결정적 역할 ‘마지막 생존자’ 온산 최형우
  • 김두수 기자
  • 승인 2023.07.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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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산’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이 제63주년 4·19혁명 유공자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을 전수받은 뒤 경기도 위례 자택에서 가족 및 측근들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승격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7년전인 1996년 12월26일 새벽 6시. YS(김영삼 대통령) 중심의 집권 신한국당은 야당이 참석하지 않은 채 오세웅 국회부의장 사회로 울산광역시 승격안을 상정, 7분 만에 참석의원들의 기립 표결을 통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의사봉 소리가 본회장을 울려퍼졌다.

당시 인구 400만명의 경남의 변방에서 인구 100만을 밑돌았던 울산시가 법적으로 광역시로 승격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당시 여권이 추진 중인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을 패키지로 묶어 11개 법안이 한꺼번에 처리됐다. 집권부 YS를 정점으로 국회 다수당인 신한국당에 의해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인데, 사실상 여권의 ‘날치기’였던 셈이다.

경남 동부권 기초단체인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승격된데는 울산지역 정치·행정계는 물론 경제계와 시민단체, 100만 시민들의 열화같은 성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특히 광역시 승격을 위해 권부와 국회가 있는 서울에서 전방위로 뛴 지역 정치·행정계·지방의회 인사들 가운데는 이미 고인이 된 인사도 많다.

대표적으로 고 김태호 전 국회의원, 고 심완구 전 울산시장, 차화준·권기술 전 국회의원 등도 제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실질적이고도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사는 역시 YS 집권 당시 ‘온산 최형우’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시 ‘온산’은 부산 연제구에서 6선 의원으로 신한국당 상임고문이었다. 말이 상임고문이지 YS를 중심으로 ‘좌동영’(경남 거창 출신 고 김동영 정무장관) ‘우형우’(최형우)로 회자될 만큼 실세 중의 실세로 통했다.

때문에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선 소위 “최형우 라인을 통하면 ‘만사형통’”이라고 할 만큼 최고 실세였던 셈이다.

하지만 온산은 울산이 광역시로 공식 승격된 1997년 7월15일을 불과 4개월 앞둔 3월11일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이후 오랫동안 재활을 받았으나, 어느날부터 거동조차 불편한 상황에 직면했다.



◇울산광역시 승격 결정적 역할 ‘온산’의 파란만장 정치 역정

1935년 10월15일 울산군 서생면에서 태어난 온산은 1954년 부산공고를 졸업한데 이어 동국대 정치학과에 입학, 1958년에 졸업했다. 제8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당선된에 이어 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치적으로 YS 직계로 활동하면서 박정희 유신정권에 이어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정권과도 정면으로 맞서온 민주투사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의원직을 상실하고 군 보안사령부에 여러 차례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신군부의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한 불운을 겪었다. 1981년 김영삼이 설립한 민주산악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1985년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연합해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의 간사장을 맡아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퇴진한 뒤 3당 통합(민정·민주·자민련)으로 이뤄진 민자당 시절 1993년 YS정부 출범과 함께 사무총장을 맡은데 이어 같은 해 12월 내무부 장관에 취임하게 된다.

이때부터 울산정치·행정계로부터 울산광역시 승격에 대한 전방위 건의를 받게 된다.

당시 김대중(DJ)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물론 여권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온산은 특유의 추진력과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이런 가파른 상황에서 1994년 10월12월 1년만에 내무부장관을 자진사퇴하게 된다.

하지만 YS의 사실상 2인자로 통했던 온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 출마해 연제구에서 당선된 뒤 신한국당 ‘최고의사결정’ 상임고문으로 등극하게 된다. 1996년 중반부터 여권지도부에 의해 국회에서 울산광역시 승격안 처리시점에 대해 치밀하고도 전략적 접근을 해온 온산은 12월 정기국회 회기중 D데이를 설정했다고 당시 핵심측근이 증언하고 있다. D데이는 1996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였다. 하지만 DJ를 중심으로 한 야권이 거세게 저지를 펼쳐온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을 패키지로 묶어 당일 의사일정상 차수가 변경되면서 26일 새벽 6시 전격 통과된 것으로 역사는 기록되고 있다.



◇풍운아 ‘온산’은 지금

YS 집권 이후 가장 유력한 여권의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 급부상했던 온산은 1997년 3월11일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여권의 권력지형이 급변했다. YS는 온산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가장 가슴프게 생각했고 한다. 2015년 11월 영원한 정치적 동지인 YS가 먼저 서거하게 되자, 거동조차 불편했던 온산은 지팡이를 집고 조문을 하면서 대성 통곡했다. 서울에서 거주해오다 현재 경기도 위례신도시에서 거주하고 있는 온산은 올해 윤석열 정부로부터 4·19혁명 유공자로 평가받가 국민포장을 전수받았다.

온산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비서관을 지낸 부산출신 여명호씨가 온산의 가족들과 함께 간간히 도우미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부인 원영일(84) 여사는 지난해 이동 중 부상을 입어 8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국회 헌정회에서 전직 원로 지원금 월 110만원을 받아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김두수기자 duso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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