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때 청국장을 끓이고 있었다.
신김치를 꺼내고 또닥또닥 두부를 썰면서
수술 후 회복 중인
그의 휴식도 토막 내 썰어 넣고 있었다.
와글와글 찌개가 끓기 시작했을 때,
기침소리 동동 떠다니고
그의 엄살이 간을 맞췄다.
반찬을 챙기며 나의 울화증도 한 대접 퍼 담아
컴퓨터 속으로 오후 한때를 비벼 넣고 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
독백*을 깨고 난생처음 잡지에 실린
내가 도착되었다.
설렘이었을까,
봉투 뜯는 손 자꾸 헛손질해대고,
얌전하게 잉크 바른 활자들이
세상의 빈자리*를 향해 발을 내밀고 있었다.
눈*이 마냥 내리던 날 오후
그가 식탁으로 등단하려던 순간, 나도
알 수 없는 세상에 첫 발을 찍으며
등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단작품의 제목
‘나’의 이름으로 반짝이는 세상에 설레는 첫 발
등단 소식은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가. 시인은 그 순간을 아예 시로 갈무리해 두었다. ‘반찬을 챙기며 나의 울화도 한 대접 퍼 담’았다는 표현에서 젊은 날의 꿈을 접고 살림만 살던 일상의 초조함이 느껴진다. 이제 무언가 ‘나’를 찾고 표현하고 헌신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시인은 시 쓰기에서 그걸 발견하고, 열심히 시를 쓰고, 투고하고, 조마조마 결과를 기다렸으리라. 드디어 처음으로 활자화된 자신의 작품을 보는, 낯설고도 낯익은 기쁨.
‘독백’ ‘세상의 빈자리’ ‘눈’ 등 자신의 등단작 제목을 시 안에 집어넣은 점이 재치있다. 문장 안에 제목이 잘 스며들어 꼭 맞는 장갑을 낀 것 같다. ‘독백’이나 ‘세상의 빈자리’에선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싶은 갈망과 그러나 독백밖에 할 수 없는 어떤 현실이 엿보인다. 그러다 드디어, 마침내, 기어이 등단이다! 수술 후 회복한 남편은 일상으로 복귀하고, 시인은 이제 ‘알 수 없는 세상’으로 첫발을 딛게 되었다.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반짝일 세상, 그 처음의 설렘.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