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신용목 ‘무서운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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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신용목 ‘무서운 슬픔’
  • 서정혜 기자
  • 승인 2023.10.16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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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모르겠지, 앉아서 쉬는 기분
누워서 자는 기분

풀썩, 바닥에 주저앉는 때와 팔다리가 사라진 듯 쓰러져 바닥을 뒹구는 때

뱀은 모르겠지,
그러나 연잎 뜨고 밤별 숨은 연못에서 갑자기 개구리 울음이 멈추는 이유

뱀이 지나가듯,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소외된 존재들의 두려움”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신용목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팔레스타인 지역의 전쟁 소식을 들었다. 한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는 또 다른 전쟁. 뱀처럼 길고 긴 전쟁 소식.

뱀은 흔히 원죄를 가진 존재로 여겨진다. 팔다리 없이 길기만 한 징그러운 몸뚱이. 생태계의 상층이라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일상을 모르고 노동과 휴식의 순간을 모른다. 경험과 느낌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셈이다. 그러니 바닥이 꺼지는 절망도 모르겠지만 하늘을 달음박질하는 환호의 순간도 알지 못한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더 슬픈 일은 저기 순사 온다, 할 때 울던 아이가 뚝, 울음을 그치던 것처럼 뱀이 지나갈 때 와글거리던 개구리의 울음이 일순 멈추는 것이다. 뱀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뱀의 입장에선 그 싸늘한 외면이 천형으로 느껴질 만하다. 손을 내밀 수도, 껴안을 수도 없는 냉혈의 몸뚱이가.

이 시는 서로 다가갈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소외된 존재들의 두려움과 슬픔에 관한 시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란 구절에서 등화관제를, 죽음의 천사가 문을 두드리던 먹빛 밤을 떠올리게 하는 저 소식들이 슬프다. 무섭고 슬프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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