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
당신은 다섯시에서 여덟시까지
안개를 지켜보았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강물을 내려다본 것뿐인데
컵 속의 물이 얇게 얼어 있었지
철로는 어느 線이든 조금씩 더러웠네
11월은 당신의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네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먼데서 얼크러진 길들이 천천히 다가왔으나
어느 길이든 상관은 없었네
철로는 어느 線이든 조금씩 더러웠네
당신은 다섯시에서 여덟시까지
안개를 지켜보았지
이제 당신은 종이컵을 구기고
신문지를 접어드네
11월은 당신의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네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
일곱시 사십분이거나, 여덟시 이십분이었어도
상관은 없었네,
단지 조금 이르거나 늦은 개찰일 뿐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
11월은 당신의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네
아무도 그걸 기억하지 않겠지만
당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도
안개가 다섯시에서 여덟시까지
당신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도
“많은 이별과 떠남속에 남겨둔 영원한 기억”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11월이면 생각나는 노래,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는 2차대전 당시 저항군으로 떠난 연인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돌아오지 않자 날마다 기차역에 가서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내용의 그리스 노래다.
권혁웅 시인은 이 노래를 바탕으로 같은 제목의 시를 썼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남자는 어찌어찌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기다림에 지친 여자는 이미 고향을 떠났다. 부모마저 안 계신 고향, 남자는 여덟 시 기차를 타고 다시 떠나려 한다. 하지만 어디로? 목적지가 없는 남자에겐 발차가 일곱 시 사십 분이든, 여덟 시 이십 분이든 상관없다. 강물처럼 흘러간 시간, 안개, 살얼음이 끼는 쌀쌀한 날씨, 얼크러진 선로들. 선로가 더럽다는 것은 그만큼 기차가 많이 지나갔다는 것이고 그만큼 많은 이별, 혹은 떠남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1월의 기억만큼은 영원히 남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