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태화강 수변을 울산의 상징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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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태화강 수변을 울산의 상징공간으로
  • 경상일보
  • 승인 2024.03.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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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해서 바다로 흘러드는 태화강은 하구의 울산만과 함께 울산 역사의 중심 무대다. 아득히 먼 석기시대부터 사람을 불러들이고, 대곡천 암각화가 상징하는 고울산 문명을 꽃피운 현장이다. 신라가 융성하고 서라벌이 번성했던 것도 태화강과 울산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중요한 울산만 방어를 위해 크고 작은 성곽이 태화강 일대와 하구에 세워지고 또 무너져 갔다. 신라 이전부터 조선 전기까지 왜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고, 신라전성기에는 왜와 중국, 동남아와 아랍 무역상이 드나든 곳이 울산 포구였다.

태화강 하구가 공업항으로 본격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도 끝나가던 1940년대에 들어서였다. 2차대전 패전으로 일본이 물러난 후 박정희장군이 이끌던 군사정부는 울산을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특정공업지구’로 선포하고, 5개년 경제개발 사업에 추진했다. 군사정부와 대한민국의 명운을 건 이 사업은 오직 천혜의 조건을 갖춘 울산만과 일제가 남긴 개발계획, 그리고 이미 확보된 광대한 공업용지와 항만시설, 철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마디로 1962년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오로지 울산이 있었기에 이루어낼 수 있었다.

빛나던 울산의 제조업 위상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가 부국이 되면서 하락하고 있다. 반도체와 같은 신산업이 대한민국 제조업을 선도하고, 경제개발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수도권으로 돈과 사람이 모이면서 첨단 신산업과 좋은 일자리는 모두 경기도 용인권 이북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마치 1960년대에 정부가 건설부에 속한 특별건설국을 울산에 두고 집중개발의 융단폭격을 퍼부어 주던 것과 닮았다. 다만 제조업 투자의 결정권이 정부가 아닌 대기업으로 바뀐 것이 차이다. 작금의 울산에는 이곳을 선택했던 대통령도 없고, 일찍 일으킨 울산의 주력산업은 후발 경쟁자에 밀리고 있다.

더구나 울산은 전통 제조업 비중이 타 산업을 압도하기 때문에 이들 주력산업이 약화되면 필연적으로 도시 전체가 큰 타격을 받는 구조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위기 상황의 원인과 결과 모두 울산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했다는 점이다. 초기 울산 개발을 정부가 독점 수행하고, 현재는 국내 최대의 제조업 생산력이 창출하는 막대한 부가가치와 국세가 울산이 아닌 수도권으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울산에 터를 잡은 대기업 본사와 연구 기능 또한 돈과 사람을 따라 수도권으로 흘러 나가고 있다. 울산은 스스로의 운명을 타개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울산은 정부와 대기업이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버티느라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데도 힘겨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울산에 다시 사람이 모여들고, 도시에 생기가 돌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여러 선진사례를 살펴보면, 활용되지 않고 있는 유휴부지나 시설 이전 적지를 되살려서 문화, 교육, 여가, 주거 등의 다양한 시설을 갖춤으로써 도시 활력을 이끌어 낸 도시가 있다. 바로 스페인 북부 대서양에 면한 빌바오시가 모범 사례다. 조선과 철강 도시였던 빌바오는 이들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 가운데 1983년 네르비온강 대홍수로 구시가지와 강변 산업시설이 큰 피해를 입자 도시재건에 본격 돌입했다. 빌바오시가 마련한 도시재생 4대 원칙 가운데 강이 도시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바꾸기 위해 수변공간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둔 것과 질 높은 도시계획과 건축을 추구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된다.

이런 원칙에 따라 추진된 빌바오 도시재생으로 네르비온 강변은 잘 정비되어 시민에게 되돌려지면서 산책로와 트램이 달리게 되었다. 강변에 들어선 빌바오구겐하임 같은 랜드마크 성격의 문화시설 등은 프랭크게리, 노먼포스터, 산티아고 갈라트라바 같은 세계적 건축가의 손에 맡겼다. 이를 이끈 핵심 조직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역의 주정부, 시정부, 정당 등이 모두 참여하는 민관 파트너십 기구인 ‘빌바오리아 2000’이다. 이 조직은 주민 중심의 도시재생이라는 원칙을 잘 지켜서 강과 강변을 되살리고, 높은 건축디자인 수준을 자랑하는 문화시설을 갖춘 ‘빌바오 효과’를 이끌어 냈다. 빌바오 성공 사례를 보면서 우리 울산도 이미 살아난 태화강과 태화강변을 시민 중심의 철학으로 잘 정비해 문화와 상업, 재미와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면, 울산을 떠난 젊은이들이 발길을 되돌리고, 세계인이 모여드는 활기 넘치는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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