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80)]허실(虛實)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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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80)]허실(虛實)의 지혜
  • 경상일보
  • 승인 2024.03.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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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을 끌어들이지,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다”라고 했다. 모름지기 리더라면 마음을 비워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부하들이 자기의 재능을 다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한비자는 ‘군주가 자신을 내비치지 않으면 의견이 있는 자들이 스스로 말하게 되고, 일하는 자들의 공적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고 했다. 노자는 ‘지나친 말과 행동은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손자병법>에 ‘허실(虛實)’이라는 말이 나온다. 힘이 잘 모인 상태가 ‘실’, 그 반대가 ‘허’다. 충분히 대비가 있는 것을 ‘실’이라고 하고,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허’라고 한다. 그런데 허실이란 단순히 이런 고정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는 말처럼 ‘허실’에는 진짜와는 반대의 모습으로 위장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허인 것처럼 함으로써 실제로는 실이 되는 것이 허실의 지혜이다.

한 고조 유방은 천하 통일 후 1년 동안이나 논공행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신들은 많은데 줄 식읍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새 불만을 토로하는 공신들이 많아지자 불안한 유방이 장량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장량은 유방에게 가장 싫어하는 자에게 제일 먼저 큰 상을 내리라고 조언했다.

유방은 내키지 않았지만, 옹치를 십방후(什方侯)로 봉했다. 그러자 불만을 토로하던 신하들은 옹치 같은 자가 후(侯)가 되었으니 우리는 근심할 게 없다고 하면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손자병법>을 보면, ‘허실을 이야기하면서 적을 조종하고, 적에게 조종당하지 말라’라고 했다. 리더는 사람들을 조종하는 역할이지, 사람들에게 조종당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리더이다. 리더 아닌 사람이 없다. 최소한 자기의 리더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는 리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진짜 리더인 사람은 많지 않다.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의 지도자급 사람 중에도 그렇다. 주도하기보다는 조종당하거나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안타까운 세태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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