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선택과 집중, 포기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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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선택과 집중, 포기의 미학
  • 경상일보
  • 승인 2024.03.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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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선택해 시작해야 하는 순간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시점을 마주하게 된다. 동물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자는 두 마리의 먹잇감을 동시에 쫓지 않는다. 그리해서는 승산이 없다.

최근 아이폰 제조업체인 애플이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포기한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충격을 주고 있다. 10년간이나 공을 들인 이 사업의 포기로 발생하는 손실도 수조 원이나 된다고 한다. 많은 인원이 인공지능 부서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도 동시에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애플의 이번 결정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비평을 내놓으면서, 애플의 레벨 5단계 자율주행차(완전 자율주행차)라는 목표가 첫 자동차 사업의 도전으로서는 너무 높은 목표였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애플의 애플카 포기 소식에 환영을 표한 것도 관심을 끌었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노력, 비용을 보면, 애플로서는 경영자의 살을 떼어내는 결단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애플카 포기 소식 이전에 이미 대기업의 유사한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2021년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애플, 삼성전자와의 기술 간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결과 연속적인 적자를 기록하다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LG가 스마트폰 생산을 종료하자 과거에 히트쳤던 LG폰과 마지막 생산된 스마트폰, 연예인의 LG폰 사용 등의 소식이 관심을 끌었다. 또한, LG가 개발 후 출시하지 못한 롤러블폰에 대한 관심도 컸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6년 삼성전자는 카메라 사업을 포기한 전례가 있다.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이재용 회장이 “나 찍는 카메라가 다 캐논”이라고 한 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농담에 다양한 해석이 실리면서 자연스레 과거 삼성의 카메라 사업 중단이 언급되고 있다. 80년대부터 시작한 카메라 사업에서 삼성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카메라 기술력을 키웠는데, 시장 축소 등 여러 사정으로 사업을 종료했다고 한다. 필자가 기억하기에도 삼성 미놀타 카메라의 인기는 상당하였다. 하지만 캐논, 소니의 벽을 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포기가 ‘끝’을 뜻하거나 의미 없는 행위일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포기는 결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유의미한 포기의 범주에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해보다가 쉽게 포기하는 것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포기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 끝에 맞이하는 결단이고 또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전단계라야 진정한 포기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때라야 아름다운 포기가 되는 것이다.

필자가 하는 업무를 중심으로 보면 특허출원의 포기가 있다. 특허출원을 한 이후에 기술을 공개하기 싫어졌다거나 노하우로 보호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경우 출원을 포기하거나 취하하게 되면 마치 특허출원을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현행 특허법에서는 출원의 경우 제도 취지상 취하, 포기의 효력이 동일하게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는 소급 소멸효가 있으나, 원래 법률용어인 포기는 포기 시점부터 장래를 향하여 소멸의 효력을 발생시킨다. 즉 포기를 하게 되더라도 포기 시점까지의 흔적을 소멸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2019년 출시한 S20에서의 100배줌 기술 등 스마트폰의 카메라기술은 과거 삼성의 카메라 기술력이 자양분이 되어 녹아 들어간 결과물이라고 평가된다. 광학기술과 반도체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이미지 센서 기술이 한마디로 스마트폰의 ‘코어근육’으로 작용한 것이다. 당시 카메라 사업 철수 이후 그 시장이 위축된 것을 보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고도 할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애플이 10년간 축적한 전기차 기술력, LG전자의 스마트폰 기술력 특히 롤러블폰 기술력 등은 또 다른 형태로 신사업, 다른 사업에 밑거름이 되고 화려한 엠블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라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세상을 더 살아보니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포기라는 순간은 있어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독자들도 곰곰이 생각해보고 둘러보자. 지금 포기해야 할 것이 있는가. 버려야 할 것이 있는가.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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