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격(格)’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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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격(格)’에 대해 생각한다
  • 경상일보
  • 승인 2024.03.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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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

미국 메이저리그 소속 LA 다저스와 SD 파드리스의 2024 정규시즌 개막 경기가 3월20일과 21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다. ‘MLB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이 경기는 1차전 티켓이 8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만하다. 엄청난 투타력을 겸비한 LA 다저스의 오타니, 역대 투수 최고액 계약금으로 입단한 야마모토와 상대 팀 샌디에이고 소속 김하성, 다르빗슈 등 ‘격’ 높은 메이저리거들의 활약상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아닌가 한다.

사상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 경기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은 박찬호 이후, 김병현, 최희섭 등 많은 선수가 MLB 무대에 진출하여 좋은 활동을 펼쳤고 지금도 김하성, 최지만 등이 맹활약하고 있는 만큼 높아진 스포츠 한국의 위상을 방증(傍證)하는 것이다.

특히, 올 시즌에 한국 최고의 타자인 이정후 선수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함으로써 야구팬들은 더 화끈한 한국 선수경기를 접할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여기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DNA를 물려받은 이정후 선수가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남긴 미담이 항간에 회자되고 있다.

이정후는 어릴 때 같이 야구를 했던 친구들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한 후 주인의 사인 요청에 응하지 않은 채 식당을 나와 버렸다. 부탁을 거절당한 주인이 언짢게 여기고 있을 때, 다시 돌아와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야구를 그만둔 친구들 앞에서 사인을 해주면 그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즉석에서 바로 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야구선수 이정후보다 남을 배려하는 인간 이정후의 높은 ‘품격(品格)’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때의 ‘격(格)’은 ‘규격(規格)’이나 ‘격식(格式)’을 뜻하기도 하지만 ‘신분이나 지위, 주위 환경 따위에 맞는 일정한 방식이나 수준’의 의미도 있다. ‘격이 있다’라는 말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가치나 수준(level)이 높다’라는 뜻이 된다.

사람과 관련하여 ‘격’이 들어간 단어를 보면 몸에는 ‘체격’, 마음에는 ‘성격’, 뼈에는 ‘골격(骨格)’, 종합적으로는 ‘인격’이 있다. 나라에는 ‘국격’, 사물에 값을 매기면 ‘가격’, 어법에도 주격, 소유격, 목적격 등 문장 속에서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또 정형적인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반복적인 언어의 리듬을 ‘율격(律格)’이라 하고, 어떤 역할이나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능력을 ‘자격(資格)’이라 한다.

일정 수준에 어울리는 자격을 지니면 ‘적격(適格)’이요, 어떤 조건이나 실력이 합당하면 ‘합격’, 필요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결격(缺格)’ 사유에 해당하고, 기준이나 규칙에 어긋나면 ‘실격(失格)’이 된다. 등급이나 지위, 신분 등의 수준을 올리거나 높이는 것을 ‘승격’ 또는 ‘격상’이라 한다. 또, 나라 발전에 뚜렷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정부가 상을 줄 때 매기는 등급은 ‘훈격(勳格)’이라 하고, 지나치게 일률적인 것에서 벗어나 격식을 과감히 깨뜨리는 것을 ‘파격적(破格的)’이라고 한다.

위스키나 의류에도 ‘격’이 있듯이 물품이나 인품에는 그 나름의 ‘품격’이 있다. 운동선수가 제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인간성이나 됨됨이가 모자란다면 ‘격’이 떨어지고, 정치인의 말(言)이 신뢰를 잃게 되면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예술가나 학자가 자신의 전공 분야에만 능통하고 인간관계를 도외시하거나, 배우가 연기는 잘하는데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지 않는다면 품위가 ‘격하’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필자가 그 옛날 ‘매난국죽’ 사군자가 상징하는 덕목처럼 엄중하고 올곧은 자세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 상당 부분 건조하고 삭막하게 치닫는 현대에는 이정후의 처신처럼 늘 역지사지하는 태도로, 이웃을 헤아리는 배려심을 갖추었을 때 최소한의 인간적 품성을 유지하고 ‘격조(格調) 있는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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