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칼럼]중병 걸린 사회, 진짜 환자는 의료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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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칼럼]중병 걸린 사회, 진짜 환자는 의료시스템이다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4.04.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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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병원에 갔다온 사람들은 다 안다. 의사가 거의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특히나 목숨이 걸린 대형 수술을 앞두고 있는 환자는 하느님 보다 의사를 더 믿는다. 그런데 요즘 국민들은 “아픈 사람만 섧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환자는 넘쳐나고 우리 사회는 중병에 걸렸다. 의사 단체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며 사직서를 냈다. 국민과 의사, 그리고 의료시스템이 모두 중병에 걸린 대한민국, 이 사태가 어디까지 갈지 걱정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시간 20분간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면담했다. 정부의 의대생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 1만1900여명이 병원을 집단이탈한 지 44일 만이다. 두 사람의 회동 이후 정부는 “전공의와 대화의 물꼬를 텄다. 앞으로도 계속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만남 직후 소셜미디어(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짤막한 글만 올렸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민들은 감을 잡을 수 없다. 의료계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의대 증원 철회 주장만 계속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매달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며 비상경영체제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암수술의 13%를 책임지고 있다는 서울아산병원조차 “급한 암환자마저 3개월을 대기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울산지역 대표 병원인 울산대학교병원도 지난달 초 비상경영체제를 도입했다. 의사들은 떠나고 환자들은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장담하건데 정부와 의사가 맞붙으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정부는 수많은 백성을 살려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지만 의사들은 직업만 포기하면 되기 때문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역 의료가 파탄날 것이 뻔하다. 울산은 전국에서도 최악의 의료취약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현재 울산은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6명으로, 전국(평균 2.13명) 꼴찌다. 뿐만 아니라 인구 1만명당 의대 정원 기준도 울산은 0.36명으로 전국 평균(0.59명)을 밑도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울산시민들은 기를 쓰고 수도권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최근 5년간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100만명 이상의 암 환자가 ‘빅5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울산의 경우 3만1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계속 밀리는 암 수술 환자들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와 전공의가 첫 대화를 가진 만큼 양측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타협으로 가야 한다. 특히 전공의와 대한의사협회는 강경일변도로만 갈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통일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2000명 증원에 대해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 통일된 안을 제안하면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지난 4일 전국 시도지사들이 공동성명문을 내고 “두 달째 계속되는 전공의 파업 사태로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으며 전국의 의료 현장은 이미 한계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지금 우리 의료시스템은 중병을 앓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 명의 화타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육불치(六不治)’를 얘기했는데 그 첫째가 ‘교만한 환자’다. 의사단체와 정부가 한 발짝씩만 물러나면 치유할 수 있는데도 양쪽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결국 정부와 의사단체의 교만한 태도는 우리의 사회시스템을 죽음으로 몰아놓고 있다. 이 와중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은 치료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숨지고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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