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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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 경상일보
  • 승인 2024.04.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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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국 학성고등학교 교사

벚꽃이 흩날린다. 꽃잎이 비가 되어 내린다. 전국이 벚꽃으로 물들었다. 모두를 황홀하게 한다. 거리는 아름다운 순간을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간을 나누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다. 함께 나눈 마음은 다시 서로의 마음에 쌓일 것이다.

지난 주말 어머니에게서 양각한 세한도를 선물 받았다. 세한도는 헌종 10년(1844년)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귀양살이(59세)하고 있을 때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려 준 작품이라고 한다. 이상적은 두 번이나 제주도로 건너가 문안했고 역관으로 연경을 드나들며 구했던 귀한 자료를 추사에게 건넸다고 한다. 귀한 책들을 여러 해 동안 어렵게 구해서 자신에게 보내준 제자에게 추사 김정희는 푸른 청송 네 그루가 서 있는 외딴집의 겨울 풍경을 세한도라고 이름하여 선물했다고 한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연후에야 비로소 소나무 잣나무의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의미다. 세한도에 인용된 논어의 구절이다. 잎이 가늘어서 주변의 잎이 무성한 계절에는 존재감을 알 수 없다가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면 그들만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세한도의 제목과 소재로 표현되어 추사와 이상적의 아름다운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좋을 때 곁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어려울 땐 곁에 사람이 없다.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상황이다. 우리 삶에 ‘이유가 있는’ 관계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유 있는 관계를 위해서 이유를 가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유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계산하지 않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은 삶을 충만하게 한다.

장무상망(長毋相忘). 세한도에 있는 인장 중 하나이다.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다. 자신을 향한 제자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나에게도 잊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나의 부족함을 언제나 말없이 채워주던 친구였다. 그러나 너무 빨리 나의 곁을 떠났다. 친구의 부재에 대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는 데 10년 이상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시절 모든 순간 함께 했던 나의 친구를 나는 많이 좋아했다. 그 친구가 곁에 없다. 그러나 그녀의 부재를 잊지 말자고 다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정이 아이들의 미소로 가득하다.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3월과 다르다. 아이들은 마음을 나누며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있다. 그중 누군가와는 오래도록 함께하는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응원한다.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아이들의 인생 목표에 ‘오래도록 함께할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현국 학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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