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91)]살라망카 : 건축은 도시 품격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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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91)]살라망카 : 건축은 도시 품격의 상징
  • 경상일보
  • 승인 2024.04.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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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여행을 하다보면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도시에서 놀랄만한 경관이나 유적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여행자로서 그 쾌감만큼 짜릿한 것은 없다. 이베리아반도에는 그런 쾌감을 선사하는 도시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세고비아에서 만난 로마 수도교나 신데렐라 성이 그러하고, 론다(Ronda)의 계곡, 몬세라트(Montserrat)의 수도원 등이 그러하다. 물론 세간에 널리 알려진 도시가 아니더라도 도시마다 경탄할 만큼 독특한 도시경관과 유산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살라망카(Salamanca)도 그런 쾌감을 주는 도시 중 하나다. 세고비아에서 서쪽으로 2시간여를 달리면 또 하나의 보석같은 중세도시 살라망카에 도착한다. 이 도시는 동서남북으로 오가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로서, 로마시대부터 요새로 건설된 도시다. 8세기부터 이슬람 세력의 정복과 기독교 세력의 각축으로 벌어진 역사는 주변 도시와 다를 바 없다. 이는 두 문명의 혼혈적 성격이 발생한 역사적 배경을 의미한다.

고색창연한 거리를 따라 도심으로 들어선다. 황색 사암으로 이루어진 중세 건축물들이 가로 경관을 주도하고 있다. 근래에 지은 현대건물도 외장재료나 색상을 일부러 맞춘 듯하다. 황색 사암이라는 색상과 물성은 구도심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묶어주는 기반이다. 외벽 장식 마저 화려한 거리 때문인지, ‘황금빛 도시(La Dorada)’로 명성을 얻었다.

외장재료는 통일적이지만 건축물들은 여러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양식으로 걷는 즐거움을 더 해 준다. 걷다보면 외벽에 독특한 혹들이 붙어있는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자세히 들여보니 조개 문양의 양각이다. 이것은 분명 산티아고 순례길의 표식이 아닌가. 왜 이곳에 순례길의 표지가 있을까?

실상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은 스페인 북부의 길(Camino de Santiago)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여러 갈래의 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봉안하는 성당이었고, 야고보는 ‘기독교인들의 영토회복 전쟁(레콘키스타)’ 과정에서 이베리아 수호성인으로 추앙되었다. 당연히 이베리아반도의 전역에서 산티아고 성당으로 향하는 길이 순례길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 13세기에 설립된 살라망카 대학.
▲ 13세기에 설립된 살라망카 대학.

로마시대에 설치된 로마 가도는 간선교통로서 순례자들이 애용하는 길이었다. 특히 세비야에서 이베리아반도를 종단하며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은의 길(silver way)’이라 불렸다. 원래 이 길은 이베리아 북부의 광산물을 남부에 있는 항구도시 세비야로 운반하기 위해 만든 포장도로였다고 한다. 이 길이 살라망카를 경유하면서 순례길의 주요한 경유지가 된 것이다. 살라망카가 경제적, 지리적 이유만이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도시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살라망카의 보물은 깊숙이 감추어 있는 것도 아니다. 구도심 입구로 들어서자, 바로 나타나는 마요르(Mayor) 광장에서부터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는다. 유럽은 이미 그리스시대의 아고라(Agora)에서부터 로마시대의 포럼(Forum)으로 이어지며 광장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니, 유서 깊은 도시 치고 광장이 없는 곳은 드물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광장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살라망카의 마요르 광장만큼 기품과 화려함을 갖춘 곳은 드물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그리 과장된 것은 아닌 듯하다.

광장을 포함한 주변 건물이 17세기의 스페인 군주인 필리페 5세가 시민을 위한 건립한 것이라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광장은 각 변이 70m에 이르는 반듯한 정사각형으로 황톳 빛 회랑이 둘러싸고 있다. 도시 전체의 ‘황금빛 이미지’와 일치되는 황색 사암을 사용한 것이다. 건물은 4층으로 구성됐는데, 1층은 88개의 아치로 구성된 아케이드가 회랑으로서 순환로를 제공한다. 때마침 스쳐 가는 소나기가 아케이드의 유용함을 일깨워준다. 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안뜰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감상하는 쾌감이다.

각 변의 중앙에는 광장으로 출입하는 입구가 있고, 시청이 자리한 변에 돌출된 시계탑을 세웠다. 이는 광장의 중심 파사드에 해당한다. 5개의 아치가 받치고 있는 시계탑 파사드는 현란할 정도로 화려한 장식으로 스페인 바로크의 절정을 과시한다. 이는 광장이 아니라 궁전 내정의 수준이다. 엘 그레코의 명화를 보는 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민을 위해 이 정도 품격의 광장을 만들어주는 군주가 있다면 어찌 존경스럽지 않겠는가.

세 번째 놀라움은 도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만날 수 있다. 그 유명한 살라망카 대학이다. 13세기에 설립된 이 대학은 살라망카를 유럽에서 손꼽히는 대학도시 반열에 올려놓는 기반 시설이었다. 단지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다. 대학은 르네상스를 주도한 ‘살라망카 학파’가 배출될 정도로 명문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리학이 발전하면서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요람이기도 하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대학의 외관은 고딕양식의 교회와 큰 차이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신학교로 시작했고, 15세기까지 교회 건물을 빌려 수업을 했으며, 졸업식도 대성당 예배당에서 치르는 전통이 19세기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 건물은 스페인 고딕양식의 혼혈적 성격을 온전히 보여준다. 뾰족한 버트레스는 고딕양식의 요소이며, 중앙의 돔 지붕은 르네상스, 벽면의 창호와 부조에서는 무데하르 성격이 나타난다.

살라망카 산책의 절정은 대학 정문의 파사드에서 만난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현란한 부조 작품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 부조장식은 ‘은 장식을 세공하는 기법(Plateresque)’이라 불린다. 이 기법은 15세기 후반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의 교체기에서 출현했는데, 고딕적 요소와 무데하르, 토스카나 르네상스의 요소들이 접합된 기법이다. 대학의 정문을 왕관 장식처럼 고급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 사회가 대학을 얼마나 고귀하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이 정도의 고상한 품격으로 대접받고 있을까.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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