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제의 독서공방](27)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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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제의 독서공방](27)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처럼
  • 경상일보
  • 승인 2024.04.2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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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성제 수필가

겨울과 여름 사이사이에 납작하게 낀 채 말라가는 봄. 전령병 황사가 도둑같이 와서 재를 뿌려대는 잔인한 4월이다. 귀 떨어져나간 녹슨 양철지붕 같은 마음이 ‘이렇게 사는 건 아니지’라고 되뇐다. 사실, 양철은 세찬 빗줄기를 맞아야만 숨 쉬는 소리가 나지.

이 절체절명의 시간에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수오서재)를 만난다. 한마디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낙비를 맞는 느낌이다. 아니 특이한 습성이지만 너무나 기다렸던 눅진한 장맛비를 즐기는 맛이다. 몸이 녹을 듯 타들어가던 양철지붕이 소리를 내지르며 숨을 쉬자 잠에 빠졌던 생각들도 눈을 뜨며 달그락달그락 숟가락질 소리를 낸다.

마흔두 편에 한 편 한 편이, 한 문단 문단이, 한 문장 문장이 비처럼 내린다. 차갑고 뜨겁고 편안하도록 미지근하고 또 시원하고 따뜻하고~. 이런 비를 맞으며 끼었던 녹이 떨어져 내린다. 눈을 감고 코도 막고 입과 귀도 닫고 싶었던 마음에 수직으로 사선으로 쏟아지는 시인의 잠언들.

‘인생이 주는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나에게 가장 후회되는 글은 생각만 하고 쓰지 않은 글’ ‘우리가 인생을 기다리는 동안 인생은 지나간다’ ‘불편함이 탈피와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 ‘생을 불태우려면 자신이 불타는 것을 견뎌야 한다’와 같은 문장이 세게 부드럽게, 쉽고 가볍게, 그런데 깊게, 더 깊게 파고든다. 이것이 비를 맞는 양철지붕의 묘미, 책을 읽는 독자의 쾌감 아닐까.

삶의 문제와 관계의 어려움, 바윗덩이에 눌려있는 마음까지 깃털이 아닌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게 하는 예화와 깨달음을 통해 책만큼 좋은 친구가 없다는 것을 다시 절감한다.

누굴 찾아 누굴 붙들고 울고 싶은가. 누구와 허심탄회하게 속을 보이며 박장대소에까지 나아갈 수 있으랴. 류시화의 신작 산문집 아니 잠언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로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면, 어쩌면 몸은 살았으나 혼은 죽어버렸을 수도 있으니 화들짝 놀라지 말고 읽어보길 강권한다.

설성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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