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른세 번째, 사제(師弟)의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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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른세 번째, 사제(師弟)의 아름다운 동행
  • 경상일보
  • 승인 2024.05.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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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복 울산고 22회 동기회장

어느 때부터인가 교육 현장에서는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성어도 어느새 낯선 단어로 전락했다. 존엄과 위엄을 상징처럼 알려줬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도 생경해졌다.

도리어 선생이 학생의 눈치를 보고, 학생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태마저 생겼다. ‘학생은 학교에서 당당하게 담배 피우고, 선생은 학교 바깥에 나가 숨어서 피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 시절이다.

어쩌다 우리 교육 현장이 이렇게 되었는지 앞선 세대로서 무척 마음이 착잡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울산고등학교 22회 동기들은 긴 인생에서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의 인연을 맺은 좋은 스승님들과 한평생 아름다운 동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에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품고 있다.

작년에는 울주군의 한 식당에서 다섯 분의 스승님을 모시고 스승의 날 행사를 가졌다. 더 많은 스승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건강 등 여러 여건 때문에 피치 못 하게 불참할 수밖에 없어 무척 안타까웠다. 연락이 가능한 스승님은 전화 통화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함께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다음에는 꼭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 오고 싶었지만, 올 수 없는 동기들도 스승님들과 전화로 뜻깊은 상봉을 했다. 주고받는 전화 속에서도 애틋한 사제의 정이 듬뿍 느껴질 정도였다. 스승님을 모시는 행사에 동기들은 너도나도 참석하려 했지만, 소수의 참여 인원에 선발되지 못하면 불가피하게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관례 아닌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불꽃 튀는 경쟁을 뚫고 참석한 동기들은 그 옛날처럼 스승님의 사랑과 좋은 기운을 한아름 받을 것이다. 누구한테나 듣는 이야기여도 스승님에게 들으면 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건강하고 행복해라. 가족들과 화목하고, 동기들과도 더 잘 지내고”. 이전에도 변함없이 들었고, 1년 전에도 들은 스승님의 말씀은 여전히 귓가에 쟁쟁하고,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가고 있다. 올해도 또 듣고 싶은 말이다.

스승님이 말씀해 주시면, 마치 바라는 그대로 되는 ‘샐리의 법칙’처럼 영험하고 효험이 있는 것 같다.

졸업 직후부터 시작되어 작년까지 서른두 번의 스승의 날 행사를 했고, 올해 서른세 번째 뜻깊은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행사가 끝난 뒤 바로 다음 날부터 우리는 오늘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기들과 만날 땐 어김없이 스승님의 근황과 안부가 이야기의 한 토막을 장식한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자녀는 물론 손주들 이야기부터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끝에는 항상 학창 시절 스승님에 얽힌 추억과 졸업 이후 계속되고 있는 스승의 날 행사 이야기는 빠짐이 없다.

똑같은 말이 되풀이되어도 늘 즐겁고 항상 설렌다.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이번엔 스승님들이 정말로 즐거워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좋은데 이유 없듯이 그냥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한 끼의 밥과 한 잔의 술을 사제가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벌써 스승님과 만날 5월15일이 기다려진다. 작년보다 더 정정해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우리 동기들은 스승보다 앞서 이승을 떠나는 못난 제자가 되지 말자는 말을 농반진반으로 하며, 건강을 보살필 것을 서로에게 주문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것이 바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스승님을 슬프게 하지 말자는 마음속 도원결의(桃園結義)는 그대로다.

누군가는 교육의 정의를 ‘함께 배우고 함께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학창 시절의 배움 못지않게 졸업 이후 인생의 항로에서 언제나 등대가 되어주시는 스승님들 덕분에 지금껏 무탈하게 올바른 행로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분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라는 우리 울산고 22회 동기회의 스승님을 향한 존경과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스승님의 은혜에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이재복 울산고 22회 동기회장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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