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이 맑다 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사랑은 늘 지상 최대의 명제”
새벽에 비가 내렸다. 오월 속에 내리는 꽃비, 찬비 속에 나를 달랜다. 몸속 깊은 곳에서 징징 우는 아우성을 듣는 듯한 빗소리다. 우리 손으로 가꾸고 키운, 성난 파도와도 같은 성난 적의가 이렇게 우리의 마음속에서 징징 우는 소리를 낸다.
4·10 국회의원 총선의 결과를 두고 정상적인 국가의 키를 잡은 사람에게 절망하는 우리를 읽는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이젠 우리는 합리적이고 학문적인 방법으로 조여 가는 수단을 택할 때가 온 것이다. 다시금 하면 된다는 불굴의 의지를 불태울 때가 온 것이다.
오월의 찬 비속에 오늘은 달콤한 연애 시로 마음을 달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도 같다.
위 시조의 작가인 임제는 선조 때 문신으로 당대 명문장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 임제가 평양의 명기(名妓)인 한우를 찾아가서, 한우에 대한 은근한 구애를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늘은 한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라는 사랑의 고백도 이쯤 되면 그 아무리 평양의 명기 한우(찬비) 일지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한우(寒雨)의 이름을 빗대어 찬비를 맞았다고, 한우의 사랑에 포로가 되었다고 엄살을 떨며 사랑을 고백한 시조이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 어디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허노라”
한우는 자신을 ‘원앙침 비취금’에 빗대어 임제에게 그 속에서 녹아나라 권한다. 임제의 우회적 구애 작전에 한우의 마음은 미리 녹아 난 것이 분명하다. 이런 구애가(求愛歌)에 이만한 화답시(和答詩)라면 그 밤은 찬비 맞은 몸을 녹아 잘만도 했겠다.
사랑은 예나 이제나 지상의 최대의 명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랑으로부터 인류의 역사 600만년을 이어오고 가꾸어 온 원천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은 오히려 이렇게 고상하고 은근하게 또 어쩌면 수준 높게 사랑 고백을 하고 그렇게 사랑을 나누었나 싶기도 하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