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정치인의 자기 확신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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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정치인의 자기 확신의 위험성
  • 경상일보
  • 승인 2024.05.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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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누구든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며 이는 스타일로 나타난다. 어느 분야이건 그 스타일이 선구적인 변혁으로 대중에게 검증을 받은 이들은 최고가 된다. 고흐와 이중섭, 헤밍웨이와 김동인의 작품 스타일은 고전이 되었다. 스타일이 대중과 국민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 중에 정치인의 통치만 한 것이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와 국민에게 빛과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근대화를 이룩해 우리가 굶지 않고 강한 나라로 일어나게 초석을 만들었다. 자신만이 지도자라 확신하며 야당을 탄압하고, 승계 없고 대책 없는 독재 정치로 수많은 국민의 희생을 초래했다.

YS는 너무 흑백이 분명한 이분법적인 스타일로 통찰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지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신념 하나로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고, 취임 후 군부독재의 근간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이뤄내는 등 업적이 크다. DJ는 독재에 항거하다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저항의 화신이다. 정계 은퇴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되어 정치보복 없이 통합의 국정운영을 했다.

이번 총선은 중간평가의 의미가 있었는데 집권여당이 참패하였기에 대통령의 입장표명에 모두 주목을 했다. 윤 대통령은 총선 6일 뒤 국무회의에서의 모두발언으로 국민에게 간접적 표현을 했다.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국민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이뤄내는데 모자랐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체감하지 못한 국민의 문제라고 들린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참패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역시 담화문이 아닌 비서관 회의에서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국회에 민생에 매진하기를 바란다’라고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주었던 모습이 연상된다. 지지율 하락이 이어지자 비로소 윤 대통령이 제안해 4월20일 영수회담이 열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분 걸리는 거리까지 오는 데 720일 걸렸다고 했고 회담 후 “답답하고 아쉬웠다”라고 했다. 1992년이 생각난다. 14대 총선에서 집권당의 패배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바로 국민담화문을 발표해 국민에 송구한 마음을 전하며 영수회담을 제의했고 이회창 대표와 만나 낮은 자세로 협치를 부탁했다. 꼿꼿한 이 대표는 성과 있는 회담이었다고 논평했다.

박근혜, 윤석렬 두 사람의 통치 스타일은 총선으로 나타난 민심을 가볍게 볼 정도로 자기 확신이 강한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신인이다. 8년간 검사가 되기 위해 공부만 했고 검사가 되어서 주어진 일에 눈치 보지 않고 수사를 밀어붙여 국민의 눈에 들었다. 경선 당시 경쟁한 같은 당 후보들이 정치역량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다. 대선에서도 그의 적은 더 훌륭한 식견을 보여 주었다.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신선하고 새로운 지도력을 기대한 마음이 몰려서 통치자가 된 것이다. 그의 실언 등을 보면 마치 모든 그것이 검증된 지도자처럼 통합보다 독선으로, 소통보다 호통의 통치 스타일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의대 2000명 증원 사태만 봐도 그렇다. 대선 공약에도 없던 것이기에 즉흥적 발상이다. 총선 패배 후 협치를 결심하며 정국운영을 유연하게 하겠다면, 지금이 의대 증원정책을 백지화하고 재논의를 할 시점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의대 입학 증원 집행취소 항고심’ 심문에서 의대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밝혀야 5월 중순에 판결을 내리겠다고 했다. OECD의 거의 모든 보고는 한국이 의료시스템이 최상이며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통치자가 마치 우리 의료가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밀어붙이니 세계의 보건 전문가들은 의아해한다. 파업이 아닌 사직으로 미래를 포기한 전공의들을 설득의 테이블로 불러 우리 의료를 회생시키려면 우선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의료개혁 특위에 의사가 오지 않는다고 할 게 아니라 올 명분을 주어야 한다.

산전수전 최고의 경륜을 검증받았던 우리 정치의 거물들도 자기 확신은 조심하며 독선을 경계하였다. 스타일은 태도에서 출발한다. 경륜이 부족하면 감정적 자기 확신보다는 겸손한 태도가 우선이다. 만권보다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 위험하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민주화 투쟁 경력의 국회의원 중 자신이 항상 선하고 도덕적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이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믿는 것 하나는 인간은 너무 약하여 언제든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위태한 존재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자기 확신을 경계하고 겸손하게 협치해 달라고 부탁, 아니 애걸하고 싶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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